일본이 민주주의 국가? 뭘 모르는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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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 민주주의 국가? 뭘 모르는 소리!

일본 정부가 일제 강제징용 배상 판결에 대한 반발에서 비롯된 부당한 경제보복 조치에 대해 ‘전략물자 밀반출과 대북제재 위반 의혹’을 들먹이며 화이트국가에서 제외함에 따라 한일관계가 경색되고 있다. 비이성적인 행태로 우리나라와 갈등을 일으키고 일부 우익 정치가들이 무례한 망언을 일삼으며 일반 시민들 사이에 ‘혐한’ 분위기를 부추기고 있다.

일본의 반지성주의를 경계하고, 평화헌법을 폐기하려는 아베 내각을 향해 ‘독재’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던 일본의 대표적 지성 우치다 타츠루는 현재 일본 사회가 강한 불안감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무언가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날 것 같은데 어떤 이유인지, 어떤 형태인지, 대응 방법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기” 때문에 문제의 원인을 자꾸만 외부에서 찾으려는 정치담론이 유행한다는 설명이다. 

그는 지난달 한 국내 언론사와 가진 인터뷰에서 일본 엘리트층의 ‘파국 원망’이라는 개념으로 이를 좀 더 구체화했다. “기존 체제를 개선하지도 극복하지도 못하는 아베는 자신의 무능함을 사과하느니 상황을 엉망진창으로 만드는 것을 선택했다. 파국적 상황이 만들어지면 아무도 실패의 책임을 묻지 않기 때문이다.” 이른바 “나만 망하는 것은 싫다. 모두가 함께 망하면 내 무능력도 비난받지 않는다는 논리”라는 주장이다.

<대세를 따르지 않는 시민들의 생각법>(바다출판사)은 우치다 타츠루가 일본의 진보적 신문 '아사히신문'이 발행하는 주간지에 6년 동안 연재한 인기 칼럼을 모은 책이다. 연재 기간 동안 일본에서는 두 차례의 정권교체와 오키나와 기지 이전 논란, 올림픽 유치 캠페인, TPP 협정 참가, 독도 및 센카쿠 열도를 둘러싼 영토분쟁 등 굵직한 이슈들이 잇따랐고, 특히 동일본 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전 사고, 집단 자위권을 인정하는 안보법 개정 같은 중요한 사건들이 일어났다. 

우치다 타츠루가 포착하는 일본 사회의 면면은 한 치 앞이 보이지 않는 혼미의 시대에 사회 곳곳이 위태롭게 흔들리고 있는 모습이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국가 시스템의 낙후성을 만천하에 드러냈으며, 공적 신뢰가 심각하게 무너진 나머지 근본적인 재편은 바랄 수도 없고, 정치가와 관료들에게 무언가를 기대한들 어떤 변화도 시도하지 않으리라는 절망감이 팽배해 있다.

더 이상 경제성장은 없으며 이대로 가면 불가피하게 활기 없는 나라가 될 것이라는 체념과 아무리 혼자 발버둥쳐도 사정은 나아지지 않는다는 답답하고 무력한 분위기가 짙게 드리워져 있다. 우치다 타츠루가 “전후 일본의 모든 정부 중 가장 무능한 정부”라고 평가하는 아베 정권은 이제 새 질서를 만들 힘도, 비전도 없기에 상황을 엉망진창으로 만들어 파국을 향해 폭주하고 있다.

전후 빈곤에서 벗어나 1960년대 고도성장기에 접어들자 일본의 소시민들은 작은 성공에 안주하며 점차 보수적인 성향을 띠어갔다. 변화를 바라지 않고 안전하게 ‘대세를 따르는 삶’을 모두가 추구한 결과, 살림은 비록 풍족해졌으나 어느새 다들 똑같은 생각을 하고 똑같은 말을 하는 대단히 동질성 높은 사회가 돼버렸다. 우치다 타츠루는 이렇게 순도 높은 집단일수록 두 가지 리스크를 안게 된다고 말한다. 

우선 위기적 징후에 둔감해진다. 어느 한 사람이 위험을 알아채더라도 그것을 지적하게 되면 ‘아무도 하지 않는 말을 하는 이상한 사람’ 취급을 당할까 두려워 입을 꾹 다물게 되기 때문이다. 우치다 타츠루는 이와 관련해 충격적인 사례를 하나 전한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당시 미국이 방사능의 진행 방향을 예상한 오염지도를 전달했음에도 행정관료들이 이를 은폐했고 그쪽으로 피난한 주민들은 피폭을 당했다.

상명하달로 모든 사안이 결정되고 중뿔나 보이는 행동이나 이의제기를 자기검열하는 조직문화에서는 미세한 징후를 알아보고 ‘이대로 가서는 안 된다’고 경고하는 사람이 드물어진다. 어떻게 행동해야 좋을지에 대한 적절한 매뉴얼이 없을 때에도 역시 적절히 판단하고 행동하는 사람은 더더욱 보기 어려워진다. 

다음으로 집단 성원의 생명이 가벼워진다. 모두가 똑같은 생각을 하고 똑같은 말을 한다면 개인은 얼마든지 대체 가능한 소모품이 된다. 실제로 오늘날 기업이 요구하는 능력은 영어나 엑셀, 파워포인트 등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을 해내는 능력’이다. ‘모든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을 해내는’ 노동자란 ‘얼마든지 교체할 수 있는’ 노동자를 뜻하며, 그것은 노동자의 고용조건을 한없이 낮출 수 있음을 의미한다. 그렇게 대체 가능한 구성원으로만 이뤄진 모두가 똑같은 집단이 과연 위기를 극복하고 살아남을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우치다 타츠루는 개인뿐 아니라 집단이 건강하게 살아남기 위해서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하는 것을 생각하고 아무도 말하지 않는 것을 말하는’ 대체 불가능한 개인이 많아져야 한다고 말한다. 자기 머리로 생각하고 자기 언어로 이야기하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집단의 언어가 풍부해지고, ‘아무도 하지 않는 이상한 이야기’를 다른 사람들에게 이해시키고 설득하려고 노력하는 과정에서 개인이 어찌할 수 없는 큰 사회문제들도 다른 사람들과 협동하여 해결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그동안 우치다 타츠루가 일본 사회를 일관되게 비판해온 논지는 바로 그 사회에 ‘어른이 없다’는 점이었다. 그가 말하는 어른이란 '적절할 때 적절한 곳에서 적절하게 행동하는 사람', '어떻게 행동해야 좋은지에 대한 적절한 기준이 없을 때에도 적절하게 행동할 줄 아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현재 일본의 문제는 그러한 어른, 곧 성숙한 시민, 지성인이 점점 사라지고 정치도, 그것을 말하는 언어도 갈수록 단순화·획일화, 유아화·열등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우치다 타츠루는 비록 듣기 거북할지라도 ‘아무도 하지 않는 이상한(?) 이야기’를 계속함으로써 위기에 대비할 수 있도록 경종을 울리는 것이 자신의 역할이라 믿으며, 소시민들이 하루하루 열심히 생활해가면서도 동시에 더 넓은 시야에서 세계와 미래를 바라보며 무엇을 할지 고민하는 성숙한 시민, ‘위대한 시민’으로 거듭나기를 바란다. 

이 책에서 우치다 타츠루가 가장 강하게 비판하는 인물은 아베 신조 총리다. 그는 ‘아베노믹스’를 ‘아베 거품’ 즉 언젠가 휴지조각이 될 것을 비싼 값에 팔아치우려는 이들이 순박하고 어설픈 먹잇감을 꾀는 노름판이라고 단언한다. 

일본 국민의 80퍼센트가 신중한 논의를 요구했던 ‘특정비밀보호법’이 2013년 의회에서 통과될 조짐을 보이자, 우치다 타츠루는 정부에 불리한 정보를 얼마든지 감출 수 있도록 허용하는 이 법안이 통과된다면 정치사의 한 페이지에 ‘민주주의의 자살’로 기록될 것이라고 강도 높게 비판한다.

그는 법안이 날치기 통과된 후에도 ‘법안에 반대하는 학자의 모임’을 결성해 반대운동 참가를 독려하는 글을 SNS에 올린다. “법안을 찬성한 의원에게 또다시 의원 배지를 달아주어서는 안 된다. 법안을 찬성한 정당에는 또다시 투표해서는 안 된다. 선거를 통해 민주주의를 배신한 대가를 톡톡히 치르게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 말고는 민주주의가 살아남을 방법이 없다.”(2011년 11위였던 일본의 언론자유지수는 특정비밀보호법 통과 이후 2016년 72위로 추락했다)

우치다 타츠루는 국가안전보장회의 관련법, 특정비밀보호법, 공모죄로 이어지는 일련의 움직임을 보면서 일본 국민들이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전후 처음으로 ‘진심으로 전쟁을 개시할 마음이 있는 정부’를 갖게 되었다고 통탄한다. 헌법9조 '무력에 의한 위협 또는 무력의 행사는 국제분쟁을 해결하는 수단으로서는 영구히 포기할 것'을 폐기하려는 개헌론자들의 논리인 '헌법은 그때마다 정부의 형편에 따라 지킬 수도 있고 폐지할 수도 있는 일개 정치적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을 비판하며, 그는 차라리 ‘헌법 폐지’를 정당의 강령으로 삼으라고 제안한다. “긴요한 사안은 내각회의에서 결정해서 주저 없이 실시하면 그뿐이다. 입법부의 심의에 시간을 들이지 않는 것, 헌법 조문을 내각의 형편에 따라 마음대로 해석하는 것”을 통치의 이상으로 삼는 사람들은 ‘개헌파’가 아니라 ‘폐헌파’라고 불러야 마땅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우치다 타츠루가 대중강연과 시위를 통해 열심히 ‘호헌’의 정당성을 알리는 사이, 아베 내각은 기존의 헌법 해석을 뒤집어 ‘집단적 자위권’(밀접한 관계에 있는 타국이 무력으로 공격당했을 경우 직접 공격을 받지 않은 일본이 군사행동을 취할 권리)을 행사할 수 있다고 의결했다. 그날의 칼럼에서 그는 이렇게 적고 있다. “2014년 7월 1일은 일본이 전후 69년 동안 내걸어온 평화주의를 버리고 전쟁의 길을 걷기 시작한 역사적 날짜로 기억해야 할 것이다.” 

의결 후 아베 총리가 기자회견에서 "해외 파병을 일반적으로 허용하지 않는다는 원칙에는 조금도 변함이 없다. 일본이 전쟁에 휘말릴 우려는 더욱 없어질 것"이라고 밝힌 데 대해, 우치다 타츠루는 일국의 통치자가 국책의 근본에 관한 중대한 정치적 결정을 설명하면서도 ‘변명으로 발뺌’하는 것을 보고 깊은 절망감을 느낀다. 해외 파병에는 항상 그것을 합리화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기 마련이다. 총리의 말은 결국 ‘이유만 붙일 수 있다면 해외 파병을 하겠다’는 말에 지나지 않는다.

“이대로 간다면 이 나라는 세계에서 잊히고 말지도 모른다. 지금 무언가 하지 않는다면 이 나라의 미래와 아이들의 자신감을 빼앗길지도 모른다. 자랑해야 할 것을 자랑하기 위해 쟁취해야 할 것을 쟁취하자. … 올림픽은 꿈을 준다. 그리고 힘을 준다. 경제에 힘을 준다. 일자리를 만든다.” 우치다 타츠루는 2020년 도교 올림픽 유치 캠페인이 한창이던 때 나온 이 표어가 지금의 일본이 사로잡혀 있는 심각한 병적 징후를 단적으로 보여준다고 말한다.

올림픽 정신 같은 대의나 세계의 운동선수와 방문객들에 대한 형식적인 환대의 메시지 한마디 없이, 이류 국가로 전락하는 데 대한 불안과 초조, 국력이란 그저 ‘돈’이라는 생각, 올림픽을 한밑천 잡는 ‘도구’로만 여기는 천박한 시각이 있을 뿐이다. 아울러 이러한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은 ‘목적이 없는’ 인간, ‘도전을 기피하는’ 인간, ‘미래를 닫아버리는’ 인간이라고 매도한다.

인플루엔자가 유행했을 때에도, 대지진 당시 우치다 타츠루가 자신의 블로그에 ‘대피를 권유하는’ 지극히 상식적인 글을 올렸을 때에도 경제 위축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그는 국민의 생명과 건강이 망가지고 개인이 아무리 불행해지더라도 경제만 성장하면 좋다는, ‘돈만 있으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도착적 사고를 개탄한다. 

오키나와 기지 이전이 이슈였던 지방선거 때 자민당은 500억 엔 규모의 지역 진흥기금 구상을 발표했다가 반대 당 후보가 당선되자 즉시 없던 일로 말을 바꿨다. ‘돈 문제가 아니야’라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그럼 돈 안 줄 거야’라고 말하는 정치인들은 ‘인간은 돈으로 움직인다’는 믿음을 은연중 드러냈을 뿐이다. 우치다 타츠루는 ‘돈으로 움직일 수 없는 인간’이 일정 비율 이상 없는 나라는 멸망하고 만다고 말하며, “올림픽을 유치하면서도 국제사회를 향해 미래지향적인 메시지 하나 발신할 수 없는 나라라면, 국제사회로부터 존중을 받지 못하는 것이 도리어 적절”하다고 평가한다. 

이 외에도 우치다 타츠루는 자민당의 정체성을 ‘친미 내셔널리즘’, 사대주의와 국가주의의 희한한 결합으로 규정하며 미국에 대한 굴종적 외교를 강하게 비판하는 한편, 오키나와 기지 이전 문제에 대해서는 일본에 대한 미국의 무법(희생 강요)을 멈추려면, 먼저 오키나와에 대한 일본정부의 무법부터 멈추라고 주문한다.

노동자들이 다른 노동자의 고용조건 악화를 반기는 기이한 현상에 대해서는 이웃을 ‘하나의 파이’를 두고 다투는 제로섬 게임의 경쟁자로만 보고 더불어 사는 동포라는 시각을 잃어버렸다고 지적하며, 다시 ‘남에게 폐를 끼치기도 하고 남이 나한테 폐를 끼치기도 하는’ 연대와 공생의 삶의 방식을 학습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우치다 타츠루는 몇몇 사회 엘리트들의 여론몰이에 휘둘리지 않는 이성적이고 성숙한 시민들, 대세를 따르지 않는 시민들의 참여로 사회를 다시 건강하게 만들 수 있다고 믿으며 시민들의 각성을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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