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하는 책] 왜 악의 돌연변이인가.. 정아은 '전두환의 마지막 3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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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하는 책] 왜 악의 돌연변이인가.. 정아은 '전두환의 마지막 33년'

  • 손유지 press9437@gmail.com
  • 등록 2023.0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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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의 마지막 33년 - 그는 왜 무릎 꿇지 않았는가 

정아은 지음, 사이드웨이 펴냄

 

'전두환은 1988년에 퇴임해 2021년에 사망했다. 최고 권력자 자리에 8년 남짓 앉았다 내려온 뒤 ‘전임 대통령’으로 33년을 산 셈이다. 그 기간 동안 전두환은 반드시 해야 했던 일을 한 번도 하지 않았다. 잘못을 인정하고 사죄하는, 그가 해야 했던 유일한 일을. 두루뭉술하게 유감 표명을 한 적은 있지만, 어떤 측면에서 봐도 속죄로 보기 힘든 것이었다. 진정한 속죄는 자신이 한 잘못이 무엇인지 명확히 밝히고 인정하는 데서 시작한다. 그는 잘못을 조금도 인정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제 과오에 대한 책임을 북에 돌리거나, ‘용공 세력’에게 뒤집어씌우며 결백을 주장했다. 말년에 썼던 회고록에서 광주에서의 학살을 용공세력에 대한 ‘국가보위 행위’로 미화했다가 소송을 당한 것은 전두환이 잘못을 인정할 마음이 눈곱만큼도 없었음을 보여주는 명백한 증거다.'

 

지난 2021년 11월 23일 대한민국 11·12대 대통령 전두환이 세상을 떠났다. 1931년에 태어난 그의 구십 인생은 파란만장했다. 전두환은 1979년 12·12 군사반란으로 정권을 찬탈한 뒤, 광주의 학살을 딛고 1980년 8월부터 1988년 2월까지 7년 반 동안 집권했다. 

 

퇴임 후 쫓기듯 2년간 백담사에 머물렀고(1988년 11월부터 1990년 12월까지), 2년간 수감 생활을 했다(1995년 12월부터 1997년 12월까지). 김영삼 정권의 과거사 청산 정책에 따라 본디 무기징역을 선고받았지만, 김대중 정권에 의해 특별 사면된 후, 그는 자신의 연희동 자택에서 자유롭고 윤택하게 노후를 보내며 천수를 누렸다. 

 

국민의 절대 다수는 그가 정당히 단죄받아야 한다고 외쳤으나, 그는 4개 필지, 3개 건물로 이루어진 약 500평 규모의 집에서 한쪽 벽면 전체를 취임식 때 했던 연설문으로 뒤덮은 채 죽을 때까지 제 무고함을 강변하며 여생을 보냈다.

 

전두환에 대한 논란은 현재진행형이다. 광주의 유족들과 전두환 집권기 숱한 인권 탄압의 피해자들은 그가 정당하게 단죄받지 않고 죽었다는 사실에 여전히 몸서리치고 있다. 2023년 초 우리에게 얼굴을 드러낸 그의 손주는 자신의 할아버지를 학살자라고 지칭하며 만인 앞에서 고통의 신음을 흘리는 중이다. 

 

그러나 그게 전부가 아니다. 전두환을 옹호하고 그의 죄 없음을 주장하는 목소리는 수십 년째 꾸준하게 이어지고 있으며, 1980년대와 5공화국에 대한 복잡하고 모순적인 정서는 많은 이들 사이에서 더욱 짙게 공유되는 중이다. 

 

그들은 전두환 집권기가 ‘단군 이래의 최대 호황’이었다는 사실을 되새기면서, “그래도 전두환 때가 먹고 살기는 좋았지”라는 말로 미묘한 심정을 드러낸다. 유튜브와 SNS에서는 ‘전땅크’, ‘엔젤 두환’ 등의 닉네임을 쓰며 전두환의 1980년대를 낭만적으로 찬양하거나 희구하는 젊은이들이 등장했다. 그들은 인터넷에서 전두환을 “진짜 애국자”, “진정한 경제 대통령”, “강하고 유능한 군인 대통령” 등으로 묘사하며 예찬한다.

 

전두환은 우리 사회를 선 긋는 하나의 정치적인 리트머스가 되어버렸다. 모두가 입에 올리지만, 아무도 전두환이라는 인물을 총체적으로 들여다보지 않는다. 대부분 전두환이 ‘나쁜놈’이라는 데는 동의하지만, 아무도 그의 악행이 어떤 개인적·사회적 특질로부터 연유했으며, 그가 왜 그렇게까지 문제적 인물로 자리매김했는지를 그 뿌리부터 추적하진 않는다. 

 

작가 정아은은 <전두환의 마지막 33년>에서 전두환이 왜 악인이 되었고, 악인으로 살았으며, 악인으로 죽을 수 있었는지를 파고든다. 정아은의 이 책은 전두환을 악마처럼 몰아붙이는 작업이 아니고, 영웅으로 미화하는 작업도 아니다. 

 

대신 그를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치열하게 규명하고, 그의 영광과 모순, 몰락, 그리고 전두환이라는 인물이 상징하는 ‘악(惡)의 기원’을 대한민국의 현대사라는 지평 위에서 가감 없이 드러내려는 전기적인 작업이다. 

 

전두환의 퇴임 이후 33년의 생애, 그와 대한민국이 맺었던 관계의 진면목을 알기 위해서는, 모든 것이 불확실했던 시기에 전두환이 어떻게 대한민국의 현대사와 만나 이 땅의 최고 권력자가 되었는지를 파악해야 한다. 

 

전두환이 끝내 무릎 꿇지 않은 이유를 알기 위해선 전두환의 개인적인 기질을 똑바로 들여다봐야 하고, 악인을 잉태하고 권력 꼭대기까지 밀어 올렸던 대한민국 현대정치사의 맥락을 정확히 직시해야 한다. 정아은은 이를 위해 전두환의 개인사적 시간과 한국의 집단적 정치 시간의 맥락을 총괄적으로 되짚어간다.

 

저자는 전두환이 어린 시절부터 대통령이 되기 전까지의 50년이라는 시간을 심층적으로 추적한다. 즉 전두환의 기질적인 씨앗이 싹튼 그의 성장기에서부터 1979년의 12·12 쿠데타, 1980년 5월의 광주를 거쳐 그가 대한민국의 최고 권력자로 집권하기까지의 과정을 그려낸다. 

 

저자는 그가 남긴 회고록과 다양한 문헌을 통해 그의 성장 과정을 되짚고, 상승을 향한 끈질긴 집념이 이뤄낸 강렬한 드라마를 꼼꼼하게 들여다본다. 전두환은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한 후 내일이라도 죽을 수 있다는 각오로 군 경력의 승승장구를 거친 뒤 박정희가 암살되기 7개월 전, 49세의 나이로 보안사령관에 파격 임명된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그가 식민과 분단, 전쟁이란 토양 위에서 ‘안 되는 것을 되게 하는’ 뚝심의 계보를 정통으로 잇는 후계자라는 사실이다. 저자는 전두환이 대한민국의 최고 권력자였던 이승만-박정희와 어떠한 일관성을 갖고 있었으며, 동시에 두 전임자들과 어떤 면에서 달랐는지를 냉철하게 분석한다. 

 

저자는 85명의 군인이 3700만 대한민국을 접수했던 1979년 12월 12일의 밤을, 그가 어떻게 광주의 비극을 딛고 권좌에 올랐는지를 철저하게 복원한다. 전두환이 ‘정보’를 다루고, 미국과의 관계를 저울질하며, 법을 짓밟고 국민을 학살할 수 있었던 대내외적 기제를 망라하며, 그의 행보에서 무신경한 낙천성의 끔찍함, 그의 무반성을 가능케 만든 ‘특별한 가벼움’을 길어 올린다.

 

이어 저자는 아무런 정통성도 없이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되었던 전두환의 1980년대가 얼마나 논쟁적이고도 아이러니한 시간이었는지를 보여준다. 1980년대는 대단히 문제적인 시기였으며, 온갖 모순으로 점철된 격정의 시절이었다. 

 

1979년의 12·12 쿠데타 이후 1987년 6월항쟁에 이르는 기간은 전두환이라는 무법자가 노골적인 폭력을 통해 이 나라의 ‘대통령’으로 점차 기정사실화되었던 시기이자 정통성 없는 대통령이라는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먹고사는 문제’에 사활을 걸었던 시기였다. 

 

누군가는 어딘가에서 뼈가 으스러지는 고문을 받고 있던 고통의 시간이었고, 역대 어느 정권보다 적나라한 부정부패로 얼룩진 시간이었으며, ‘한 명 대 사천만 명의 대결’이라 불릴 수 있을 어두컴컴한 시간이었으면서도, 동시에 전두환이 김재익이라는 걸출한 인재를 내세워 경제 분야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을 이뤄내며 이 땅에 물질적 풍요를 불러온 시기이기도 했다. 

 

전두환은 분명 핵심 인재를 적재적소에 배치할 줄 알았던 용인술을 보여주었으며, 이러한 1980년대 5공화국의 성과들은 그가 퇴임 뒤에도 자신의 ‘공(功)’을 소리높여 외치는 근거가 돼주었다. 저자가 책에서 서술하고 있는 것처럼, 1980년대라는 모순적인 상황을 정면으로 바라보는 것은 대한민국이 왜 그의 퇴임 후에도 전두환을 끝끝내 무릎 꿇리지 못했는지를 추적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작업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전두환은 분단과 전쟁 이후 거대한 공백과도 같았던 대한민국의 시공간에서 ‘안 되는 일을 되게’ 만드는 전임자들의 전통을 착실히 따라 대한민국의 최고 권력자가 되는 영광을 누렸다. 그는 자기 정통성의 부재를 만회하기 위해 이 땅에 부분적인 자유와 물질적 풍요의 기반을 선사했고, 그때 싹튼 개인주의와 감각적 자유는 1990년대 대한민국에서 절정을 맞는다. 

 

전두환이 권력에서 물러난 뒤 그의 가장 가까운 친구였던 노태우가 대통령에 올랐고, 민주화를 위해 평생을 투신했던 김영삼과 김대중이 차례로 대통령이 되었다. 노태우는 자신과 하나의 뿌리를 가졌던 전두환을 냉정하게 뿌리쳤고, 김영삼은 그를 감옥 안으로 집어넣었고, 김대중은 그를 감옥 바깥으로 풀어주었다. 

 

1989년 12월의 5공 청문회로 일약 이 나라의 스타가 되었던 노무현은 대통령에서 물러난 뒤 전두환과 극단적으로 다른 방식을 취하며 스스로를 채찍질했고, 박정희의 후계자 박근혜는 전두환의 부정 축재 재산을 몰수했지만, 그 또한 전두환을 향한 사적 복수의 자장에서 자유로운 것은 아니었다.

 

결과적으로 전두환은 권좌에서 내려온 뒤 백담사와 감옥 안에서 각각 2년의 시간을 보낸 것을 제외하면 수영장과 스크린골프장과 널찍한 정원이 딸린 광활한 저택에 머물며 자유롭게 살았다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했을까. 대한민국은 왜 퇴임한 학살자를 제대로 처벌하지 못했을까. 드물게 이뤄졌던 처벌은 왜 그렇게 단편적이고 자의적이었을까.

 

저자는 전두환이란 인물을 둘러싼 우리나라의 최고 권력자들, 즉 노태우와 김영삼, 김대중과 노무현, 그리고 박근혜의 개인적·사회적·역사적·정치적 동역학을 추적한다. 전두환을 향한 우리 사회의 단죄와 용서가 시스템과 법치가 아니라, 정치적 진영을 떠나 최고 결정권자의 사적 동기로 가해졌다는 사실을 직시하며 한국의 민주주의가 여전히 ‘직선제’ 그 이후로 도약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냉정하게 지적한다. 

 

저자의 표현처럼, 전두환은 이미 우리 사회의 뼈아픈 ‘대자아’가 되어버렸다. 전두환은 우리가 지나온 한 세기를 보여주는 인물, ‘시층이 겹겹이 쌓인 한반도의 20세기를 보여주는 절단면 같은 인물’이 되었다. 때문에 전두환의 퇴임 후 33년을 정직하게 바라보는 일은 대한민국의 가장 첨예하고 취약한 면모를 드러내는 것과 다름 아니다.

 

전두환이 퇴임 뒤에라도 반성했다면, 진심으로 용서를 구했다면, 그는 그의 가족과 측근들이 그렇게도 부르짖는 ‘정당한 평가’를 받았을지도 모른다. 최고 등급의 결정권을 가진 이의 인격은 자신만의 것이 아니며, 헌법상 최고 통치권자의 자리에 오르는 순간, 그는 그가 속한 사회의 공기와 만나며 서로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전두환이 어떤 죄과를 갖고 있고 어떤 악행을 저질렀든, 1980년대는 뛰어난 관료들이 정책을 잘 펴고 전두환이 이들에게 전적으로 힘을 실어줘 경제가 순항을 탔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그런데 전두환은 제 원죄에 대해 전면 부정함으로써 자신의 ‘공’에 해당하는 사항을 인정받게 될 수 없었으며, 그가 자신의 죄를 부정할 때마다 그의 정체성은 ‘살인자’로 귀결되고 그때마다 세상은 그가 저지른 극악무도한 죄를 인식하게 되었다.

 

저자는 1980년대 독재자를 향한 퇴보적인 선망이 대한민국이 1990년대 글로벌 자본주의 체제에 편입된 후 국민이 얼마나 치열한 경쟁에 노출되어 있는지, 그래서 사람들이 과거 개발연대 시절의 ‘강력한 국가’를 얼마나 그리워하며 또한 1980년대의 공동체적인 소속감과 유대감을 얼마나 희구하는지를 역설적으로 반증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저자는 전두환과 같은 극단적인 악의 돌연변이가 이 땅에서 다시 득세하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라고 말한다. 전두환과 같은 인물의 재등장을 막는 것은 우리가 어떻게 이 사회의 가장 기초적인 ‘선(線)’, 법치주의와 사회적 규준을 정착시켜 가는지에 달려 있음을 논증한다. 

 

우리가 지금 전두환의 직계 후손이 살아오는 내내 혹독한 죄책감에 시달려 왔음을 지금 생생하게 지켜보고 있는 것처럼, 악을 제대로 처단하지 못한 후과와 그 상흔은 이 공동체의 모든 구성원을 오래도록 고통스럽게 얽어매고 있다. 

 

저자는 전두환을 읽어내는 일은 한국을 읽어내는 일이고, 자신을 정확하게 읽어내는 국민만이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전두환이라는 악인(惡人), 전두환과 대한민국의 관계를 정확하게 바라보고 그것을 넘어설 때에만 우리는 선과 악, 말과 행동, 과거와 미래, 현실과 이상을 제대로 가늠하며 건강하고 성숙한 사회로 나아갈 수 있다고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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