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의 비건지향] 설렘이 사라진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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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의 비건지향] 설렘이 사라진 이유

  • 이은진 press9437@gmail.com
  • 등록 2022.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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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데일리] 미니멀라이프는 코로나시대를 거치면서 대중들의 마음에 크게 자리잡혀가고 있다. 집에 머무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눈에 밟히는 물건들을 보며 정리하고 싶은 욕구가 샘솟는다. 

 

정리하고 싶은 마음이 커지는 반면 어디서부터 정리할지 어려운 사람들이 대다수다. 비슷한 마음을 가지고 정리에 도전장을 내밀어 실천하는 모습을 담은 책들이 있어 눈길을 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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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xabay

 

 

옷장은 터질 지경인데 막상 입을 옷이 없다. ‘세일’, ‘떨이’란 말에 혹해서 산 옷들은 애물단지가 됐다. 스트레스를 옷 쇼핑으로 풀다 보니 밀려드는 카드값에 다시 스트레스를 받는다. 이 악순환을 끊을 수는 없을까.


딱 1년만 옷 안 사고 대신 내 옷장에서 쇼핑을 시작해보면 생각보다 좋은 옷이 많았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나아가 이미 가진 옷들 중에서 나에게 어울리고 필요한 것만 추려내는 작업을 해보는 것은 어떨까. 옷과 나 자신을 새롭게 발견하면서 삶의 변화가 시작될 수 있다.


결혼과 출산 후 직장을 그만두고 의기소침해져 가던 <딱 1년만 옷 안 사고 살아보기>(임다혜 지음, 잇콘)는 어느 날 변화를 결심한다. 출발은 사소했다. 

 

특별히 비싼 걸 산 적이 없는데 가계부 적자가 조금씩 늘어나는 걸 발견한 날, 유리창에 비친 초라한 자신의 모습을 직시한 날, 옷을 사봤자 예쁘지도 않은데 돈이라도 아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딱 1년만 옷 쇼핑을 멈추기로 하고, 블로그를 개설해 진행상황을 기록하기 시작한다.

 

'이제 와 생각해보니 나는 옷을 산 게 아니라 더 나은 내가 될 수 있을 것 같다는 ‘설렘’을 샀던 것 같다. 그 설렘은 집 옷장에 옷을 거는 순간 사라져버린다. 그리고 더 좋은 것이 또 어딘가에 있을 것 같은 새로운 설렘이 찾아온다. 어느 책에서 설레지 않는 건 버리라는 말을 봤다. 그동안 나는 고민 없이 일단 사놓고 나중에 정리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정리가 되기는커녕 점점 노폐물이 쌓여가는 느낌이었다. 몸을 디톡스 하듯 옷을 안 사는 것으로 옷장을 디톡스 해보자! 그렇게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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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을 사지 않으니 묵혀둔 옷들을 다시 보게 되었고, 자리만 차지하던 옷들을 처분하게 됐다. 그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유혹 앞에 고민하고, 시행착오도 겪었지만 그런 과정까지 솔직하게 공개한다. 


1년이 지나자 단순히 옷장만 정리된 게 아니라 그녀의 내면과 생활까지 바뀌었다. 자신을 더 믿게 되었고, 도전을 즐기게 되었으며, 무엇보다 하루하루가 즐겁고 내일이 기대된다. 1년의 시간은 멈춰 있었던 게 아니라 옷장을 비우고 자신을 채우는 시간이었던 것이다.


프로젝트는 단순히 쇼핑을 금지하는 것에서 끝나지 않고, 이미 가진 것들을 들여다보며 불필요한 것을 비우는 단계까지 발전한다. 


우선 옷장을 열어 재고조사를 하고, 못 입는 옷을 걸러내고, 종류별로 분류해서 꼭 필요한 옷만 추려낸다. 1000벌 가까운 옷을 132벌로 줄이는 과정은 눈물이 날 정도로 괴롭지만, 옷장이 비어갈수록 왠지 모르게 마음은 홀가분해진다. 

 

과거의 나는 어떻게 쇼핑을 했고 생활해 왔는지, 옷장을 정리하는 과정 속에서 나의 마음과 생활을 들여다본다. 몸과 마음을 가꾸면 더 이상 옷의 가짓수는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렇게 저자는 옷을 버렸는데 입을 옷은 더 많아지는 놀라운 경험을 전하고 있다.

 

'옷은 내 생활을 보여주는 상징같은 물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싸구려 옷이 산처럼 쌓인 모습은 옷뿐만 아니라 이 것저것 시도하다가 하나도 제대로 못 끝낸 내 생활을 보여주는 것 만 같다. 옷장을 볼수록 마음이 무거워졌다. 어떻게 이제까지 아무 렇지 않게 이런 옷장을 보며 살았지? 이제는 나도 변할 때가 된 것 같다.'

 

머리로는 알지만 실천하기란 쉽지 않은 법. 이 책에는 지금 당장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실용적 팁이 가득하다. 쇼핑 욕구를 다스리는 요령, 데일리룩 사진을 찍으며 나만의 스타일 찾는 법, 티셔츠부터 코트까지 종류별, 단계별로 옷장 비우는 법을 알려준다. 


처분할 옷을 처분하는 대신 기부하는 방법도 공개한다. 무엇보다 자신만 스타일을 찾기 위해 이미지 컨설팅을 받으며 얻은 노하우와 그것을 실천하면서 얻은 깨달음까지 담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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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네 살에 독립해 36년째 혼자 살고 있는 저자는 한 살, 두 살 나이를 먹으니 점점 체력이 달리고 유품 정리를 해줄 사람도 마땅찮으니 훗날을 위해 슬슬 물건을 버려야겠다고 생각하지만 어영부영하다가 어느새 예순이 훌쩍 넘었다. 


젊은 시절에는 여러 차례 이사를 다니며 어느 정도 짐을 줄였지만 한집에서 20년 가까이 살다보니 쓸모없는 물건들이 쌓여만 간다. 갖고 싶다는 물욕에 휩싸여 사 모은 의류, 신발, 가방, 종이, 주방용품, 영상 음향 기기, 각종 생활용품, 책까지 하지만 이제는 아무리 봐도 물건이 너무 많은 상황이라 “버려, 버려, 일단 버려” 하며 집안을 돌아다녀보지만 하나를 버리면 두 개를 새로 사는 바람에 짐은 줄지 않는다. 과연 저자는 물욕을 잠재우고 깔끔하고 산뜻한 생활을 시작할 수 있을까.


미니멀라이프를 꿈꾸면서도 평생 맥시멀리스트로 살아온 무레 요코는 <욕망과 수납>(무레 요코 지음, 문학동네)에서 지금까지 자신이 어떤 물건들을 왜 샀는지, 그 소중한 물건들에 얽힌 이야기와 개인사를 풀어간다. 


방 한 칸을 채울 정도로 전문가 못지않게 구비한 기모노, 지진이 나면 깔려 죽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사방에 가득한 책, 뭐든 손에 들고 봐야 직성이 풀리는 탓에 쌓인 종이류, 기분전환 삼아 사 모은 예쁜 식기류, 좋아하는 음악이 담긴 CD와 영화 DVD 등 하나같이 애정 어린 물건들이라 버리려고 내놨다가도 “잠깐만” 하면서 이내 거둬들여 좀처럼 처분하지를 못한다. 인생 후반부에 접어들어 더는 물러설 곳 없이 짐 정리라는 과제를 마주한 저자의 도전담이 펼쳐진다.


‘주위를 둘러보면 물건, 물건, 물건투성이. 여기 이사 오기 전에 살던 방 두 개짜리 맨션은 48평 정도라 거기서는 충분히 정리가 되었는데, 이곳에 20년 가까이 살면서 물건이 부쩍 늘어난 것이다. 집이 넓어도 물건을 많이 놓지 않고 말끔히 사는 사람이 있다. 하지만 나는 이사한 집의 크기에 맞춰 물건을 늘렸다. “이제 정말로 어떻게든 해야 해!” 농담이 아니라 진지하게 생각해야만 했다. 게으름 피우는 것도 올해가 마지막이라고 각오해야 한다. 책을 한가득 끌어안고 이동하기도 벅차고, 구입하거나 보내주는 잡지를 처분하기도 귀찮아졌다. 인터넷 보급으로 집에서 온갖 물건을 쉽게 살 수 있게 된 것도 참을성 없는 내게 안 좋았을지도 모른다. 사는 거야 좋지만 집에서 내보내는 일까지는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점점 나이가 들어 내 뜻대로 움직일 수 없게 된다고 생각하면, 앞으로 1~2년이 물건을 처분할 마지막 기회다. 지금도 인터넷에서 구입한 물건이 담겼던 크고 작은 상자 열 개 정도를 해체하고, 잡지나 책을 끈으로 묶어서 재활용 쓰레기 수거일 전날 맨션 앞 쓰레기장에 내놓기조차 귀찮다.  리베이터가 있는데도 말이다. 체력이 얼마나 약해졌는지, 어쩌다 이토록 게으름뱅이가 되었는지 생각하면 기가 막힌다.’


‘집은 취향을 담는 공간이다’라는 말처럼 저자는 좋아하는 물건들로 집을 가득 채웠다. 작가답게 어린 시절부터 책을 좋아해 초등학교 입학 전에 이미 어른 키 높이의 책장에 책이 가득 찰 정도였고, 제 손으로 돈을 벌면서부터는 퇴근길 매일 서점에 들러 책을 대여섯 권씩 사서 귀가할 정도였다. 


방에 1미터 이상 되는 책 기둥이 몇 개나 세워질 정도라 “책 좀 그만 사”라는 어머니의 잔소리에 결국 독립까지 했다. 그러나 이제는 책 처분을 위한 전쟁을 시작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엄격한 선별과정을 거친 몇 권의 책만 남겨 책장에 딱 한 줄씩만 꽂겠다며 필요한 페이지만 스크랩하기, 도서관에 책 기증하기, 모닥불에 책 불태우기 등 온갖 방법을 동원한다.


“설레지 않으면 버려라”라는 말도 있지만 저자는 그 나름 설레는 물건뿐이라며 애써 소중한 물건들을 정리해간다. ‘그거 괜찮다던데…’라며 사 모은 조리도구도 자주 쓰는 것만 남겨두고, 하나둘 사 모은 예쁜 식기도 혼자니까 3인용만으로 충분하다며 그 수를 줄인다. 


나이들어 자연스럽게 체형과 취향이 변해 옷이나 신발, 가방 등도 계절, 목적, 사용 빈도에 따라 도표로 정리해 손이 안 가는 제품은 바자회에 보내거나 주변에 나눠준다. ‘언젠가 쓸지도 몰라’ 하며 출력해둔 다양한 인쇄물 또한 귀여운 동물 사진만 제외하고는 정보만 활용한 뒤 바로 버리겠다고 노선을 바꾼다.


‘불필요한 물건이 있으면 조금씩 처분하면 좋을 텐데 그걸 끌어안고 지내니 집이 창고가 된다. 하지만 내 집이 아닌 여기서 언젠가는 나가야 한다는 사실에 조금 기대하고 있다. 그때가 대량으로 물건을 처분할 기회다. 그렇지만 그때가 언제가 될지도 모르고, 마냥 손놓고 지낼 수도 없으니 그때그때 할 수 있는 일은 해야 한다. 음식물 쓰레기는 절대로 쌓아두지 않고, 전단지나 팸플릿은 그때그때 잘 처분하니 다른 물건도 그럴 수 있을 텐데도, 썩거나 냄새가 나지 않는 물건, 그리고 조금 무거운 물건은 처분할 의욕을 잃는 듯하다. ‘온실 속 화초도 아닌 주제에’ 하며 나에게 화가 난다.‘


‘어차피 나중에 쓸 거니까’ 세제나 청소용품 등을 세일할 때 쟁여두기도 하고 ‘어차피 배송료가 드니까’ 인터넷 쇼핑을 하며 여러 개를 한꺼번에 주문하기도 했다. 사용하고 제자리에 두지 않아 사라진 물건을 새로 구매하면 그제야 뜬금없는 장소에서 찾아 여분이 생기기도 하고, 새것으로 교체했으나 업체에서 수거해가지 않은 청소기나 노트북, DVD 플레이어 등도 방치해뒀다. 


그 결과, 고양이와 단둘이 방 세 개에 베란다까지 쓰는데도 방마다 물건으로 꽉 차 있다. ‘언젠가 이사할 테니 그때 한꺼번에 버려야지’ 하며 차일피일하다가 감당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고 작은 집으로 옮길 날은 요원하기만 하다. 1층 쓰레기 집하장에 내려놓기만 하면 된다는 걸 알면서도 예순이 넘으니 괜히 허리를 삘까봐 두려워 자꾸 미루게 된다. 


그래도 조금씩 비워 이제 좀 짐을 줄였나 하며 기뻐하던 것도 잠시, 어머니가 재활병원에 들어가며 남긴 물건을 떠안게 된 저자의 미니멀라이프를 향한 좌충우돌 일상이 이 책속에서 유머러스하게 그려져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