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와 사람] 엘리자베스, 여왕의 조건을 말하다
  • 해당된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슈와 사람] 엘리자베스, 여왕의 조건을 말하다

英 연방수장이자 정신적 지주 엘리자베스 2세 여왕 영면에
70년간 재위하며 국민 신임 얻어.. 철저한 자기통제에 기인
자신 낮추고 국민 높이는 '겸손의 리더십' 세계인 기억 속에

  • 이종은 sailing25@naver.com
  • 등록 2022.09.09
  • 댓글 0

[지데일리] "국민을 높이는 겸손의 리더십을 보여줬다."

 

지난 70년간 영국 연방의 수장이자 정신적 지주로 존경을 받았던 엘리자베스 2세(Elizabeth II, Elizabeth Alexandra Mary Windsor) 여왕이 8일(현지시간) 96세로 서거했다. 

 

1.jpg
어린 나이에 재위한 엘리자베스는 매우 엄한 왕실의 전통과 준칙에 둘러싸여 평생을 살아왔다. 그녀의 말과 행동 하나하나가 곧 영국을 대표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국가의 중대사가 있을 때는 총리까지 찾아와 여왕에게 조언을 구하곤 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 ⓒpixabay

 


세계적으로 현재까지 왕가의 전통을 이어오는 나라는 많지 않다. 더욱이 엘리자베스 여왕처럼 70년간 재위하며 국민의 신임을 얻기란 쉽지 않다. 이는 영국 왕실의 엄격한 규율과 엘리자베스의 철저한 자기통제에 기인한 영향이 크다는 평가가 나온다. 

 

영국 왕실은 이날 오후 엘리자제스 2세 여왕이 스코틀랜드 밸모럴성에서 평화롭게 세상을 떠났으며, 큰아들인 찰세 왕세자가 찰스 3세 국왕으로 왕위를 계승한다고 발표했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고령과 건강 악화에도 불구하고 지난 6일 밸모럴성에서 리즈 트러스 신임 총리를 접견하고, 그를 공식 임명했다. 그날 일정이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마지막 공식 행사가 됐다.


여왕은 다음날인 7일부터 휴식을 취하라는 의료진의 권고로 모든 일정을 취소했지만, 끝내 건강을 회복하지 못한 채 영면에 들어갔다.


여왕이 여름 별장겸 휴양차 머물로 있던 밸모럴성에는 전날부터 찰세 왕세자 부부와 앤 공주, 앤드루 왕자, 에드워드 왕자 등 왕실 직계 가족들이 함께했다.

 

엘리자베스는 스물다섯에 여왕이 됐다. 사실 엘리자베스가 여왕이 될 것이라고 예상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영화 <킹스 스피치>로 전 세계에 감동을 준 그녀의 아버지 조지 6세가 급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탓이었다. 

 

엘리자베스는 아버지의 죽음을 슬퍼할 틈도 없이 왕위에 올랐다. 그렇지만 대관식을 치르기도 전에 또 다른 슬픔이 그녀를 덮쳤다. 엘리자베스의 든든한 후원자였던 할머니 메리 왕비가 사망한 것이다. 

 

3.jpg
오랜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여왕으로서의 조건이나 가치가 존재한다면, 그것은 바로 국민을 향한 진실한 마음일 것이다. 이에 영국인들은 엘리자베스를 ‘마음의 여왕’이란 호칭으로 불렀다.

 


메리 왕비는 세상을 떠나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엘리자베스의 후원자가 됐다고 전해진다. 자신의 장례식 때문에 엘리자베스의 대관식이 절대로 미뤄져서는 안 된다는 유언을 남겼고, 이 유언은 그대로 지켜졌다. 

 

엘리자베스는 웨스트민스터 성당에서 거행된 대관식에서 “목숨이 다하는 날까지 영국과 국민을 위해 봉사하겠다"고 신 앞에 맹세했다. 그때부터 엘리자베스는 이미 앳된 아가씨가 아닌 군주의 책임이라는 무거운 짐을 짊어진 여왕으로서 입지를 다지기 시작했다.

 

어린 나이에 재위한 엘리자베스는 매우 엄한 왕실의 전통과 준칙에 둘러싸여 평생을 살아왔다. 그녀의 말과 행동 하나하나가 곧 영국을 대표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국가의 중대사가 있을 때는 총리까지 찾아와 여왕에게 조언을 구하곤 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엘리자베스는 재위 기간 내내 군림하되 통치하지 않는 군주의 모습을 여실히 보여줬다. 정치에 간여하지 않고 국민의 입장에서 국민의 마음을 대변해야 하는 여왕의 역할을 명확하게 이해한 까닭이다. 

 

여왕은 총리와의 주례 면담에서도 “이것이 나의 충고이니 따르시오”라는 식의 태도를 취하지 않았다. 자신은 충고를 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오로지 적절하게 의논하기 위해 존재했다. 

 

엘리자베스의 이같은 자세는 어린 시절부터 체득한 왕실의 교육과 타고난 겸손함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한다. 엘리자베스가 재위 기간 내내 얻고자 했던 것은 권력도 부도 아닌 국민의 마음이었다. 

 

오랜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여왕으로서의 조건이나 가치가 존재한다면, 그것은 바로 국민을 향한 진실한 마음일 것이다. 이에 영국인들은 엘리자베스를 ‘마음의 여왕’이란 호칭으로 불렀다.

 

2.jpg
영국인들은 여왕으로서의 그녀뿐만 아니라 아내로서, 어머니로서, 할머니로서의 그녀를 존중하고 지지했던 것이다. 자신을 낮춤으로써 국민을 높이는 ‘겸손의 리더십’, 이것이 바로 엘리자베스가 국민의 마음을 얻어낼 수 있었던 비결로 꼽힌다.

 

 

엘리자베스의 리더십을 한마디로 정의한다면 ‘겸손의 리더십’이라 할 수 있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여성이기도 한 엘리자베스는 늘 미디어와 대중의 뜨거운 관심을 받아왔던 인물이다.

 

미디어은 그녀의 작은 행동 하나하나에 의미를 부여했고, 수많은 파파라치들은 그녀의 결점을 찾아내기 위해 눈을 부릅뜨기도 했다.

 

또한 그녀가 나타나는 장소마다 그녀를 연호하는 엄청난 인파가 몰려들었다. 그러나 여왕은 결코 화려하거나 오만하지 않았다. 몸에 밴 겸손함을 잃지 않았던 인물로 기억된다.

 

여왕은 극장에 갈 때에는 사전에 알리지 않고 객석 조명이 꺼진 뒤에 입장했고, 공공 주택 사업에 나가 앉아 차를 마시거나 문틈으로 들여다보는 대신에 교실 안에 들어가 직접 살폈다. 이와 관련해 그룹 비틀즈 출신의 가수 폴 매카트니는 이런 여왕을 두고 “마치 우리들의 엄마 같았다”고 회상했다. 

 

영국인들은 여왕으로서의 그녀뿐만 아니라 아내로서, 어머니로서, 할머니로서의 그녀를 존중하고 지지했던 것이다. 자신을 낮춤으로써 국민을 높이는 ‘겸손의 리더십’, 이것이 바로 엘리자베스가 국민의 마음을 얻어낼 수 있었던 비결이라는 시각이 대체적이다. 

 

이를 두고 정치분야 전기 작가인 샐리 베덜 스미스는 엘리자베스 여왕이 이끈 것은 정치가 아니라 국민의 마음이었으며 자신을 낮춤으로써 국민을 높이는 겸손의 리더십이라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