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의 끌리는 책] 생명을 키우고 도시를 살리는 '해충'이라니
  • 해당된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주의 끌리는 책] 생명을 키우고 도시를 살리는 '해충'이라니

  • 이은진 press9437@gmail.com
  • 등록 2022.08.17
  • 댓글 0
3.jpg
ⓒpixabay

 

모기가 우리한테 해 준 게 뭔데?

프라우케 피셔·힐케 오버한스베르크 지음, 추미란 옮김, 북트리거 펴냄

 

'우리는 생물 다양성이 없는 상태란 곧 추구할 가치가 없는 상태라고 확신할 수 있다. 과학자들은 언제 어디서 티핑 포인트에 도달할지 전혀 예측할 수 없다는 점도 큰 문제라 보고 있다. 우리는 종들이 각자의 생태계에서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지 모르는 채, 맹목적으로 종들을 멸종시키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 주변의 모든 것을 가까스로 유지하고 있는 그 최후의 한 종이 언제 사라질지는 아무도 모른다.'

 

환경 선진국 독일의 여성 생물학자와 경제학자가 공동 집필한 생물 다양성 보고서이다. 생물학과 경제학의 만남이라고 할 때 서로 상충되는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지만, 두 저자는 바로 그러한 인식의 허점을 파고든다. 


생물이 더 이상 멸종되지 않도록 지켜야 하는 것은, ‘생명의 평등함’이라는 근본적인 도덕률 외에도 우리가 그토록 추구해 마지않는 경제적 필요 때문임을 증명해 보인다. 


모기를 비롯해 해충이나 하찮은 존재로 여겨져 서서히 사라져 가고 있는 생물들조차 알고 보면 다양한 영역에 걸쳐 촘촘히 인간의 삶을 지탱하고 있다. 생물들은 비옥한 땅을 마련해 주고, 홍수를 막아 주고, 물과 공기를 정화해 주고, 천연 약품과 휴양 환경을 제공해 주며, 무엇보다 우리를 먹여 살린다. 


책은 이러한 사실을 인간의 양심에 엄중하게 호소하기보다는 뚜렷한 경제적 근거 자료와 유머러스한 입담을 바탕으로 편안하게 이야기한다. 나아가 이러한 깨달음을 바탕으로 인간이 최대한 생물 멸종을 막고 생물 다양성을 유지하며 그들과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한다.


책은 우리 인간종이 생태계 약 800만 종 가운데 한 종일 뿐임을 강조하면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럼에도 전체 생태계에 군림하며 다른 종들을 멸종시키고 있는 현 상황은 한참 잘못됐다는 것이다. 


지구상에 생물이 출현한 이래로 이른바 대멸종이 다섯 번 있었는데, 그중 2억 5200만 년 전에 당시 존재하던 생물 90%가 멸종한 것으로 추정한다. 가장 최근의 대멸종은 6600만 년 전 기후 재앙으로 촉발되었으며, 이때 거대 공룡들도 멸종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인간종은 존재하지 않았으므로 지극히 ‘자연적인’ 멸종이었다. 그러나 대멸종을 제외하면 자연적인 멸종률은 100만분의 1에 불과하다. 1년에 100만 종 중 1종이 멸종한다는 뜻이다.


문제는 이 자연적인 멸종률보다 무려 1000배 더 높이, 인간들이 현재 지구상의 생물들을 무자비하게 멸종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인간종이 등장해서 생태계에 개입하기 시작한 세월은 지구 나이에 비하면 ‘고작’ 8000년밖에 안 되는데도, 이 하잘것없이 짧은 개입이 이른바 ‘제6차 대멸종’을 부르고 있는 셈이다.


국제자연보전연맹은 멸종위기종을 조사해 적색 목록(Red List)을 발표하고 있다. 2020년 초까지 11만 6000종 이상을 대상으로 멸종 위기의 정도를 조사했고 그중에 27%인 3만 1000종을 멸종 위기 상태로 분류했다.


이 수치를 근거로 볼 때, 지금까지 다 알려지지 않았지만 존재한다고 추정되는 800만 종 중 200만 종이 멸종 위기에 처해 있다고 할 수 있다.


단순히 멸종 위기종의 숫자만 놀라운 것이 아니다. 저자들은 2억 5,200만 년 전 대멸종의 총 기간이 3만 년 정도였던 데 비해, 우리 시대의 멸종은 급속도로 빠르다고 지적한다. 종이 사라지고 있다는 걸 ‘체감’할 수 있을 정도이니 말 다 한 셈이다. 


원래 모든 종과 생태계는 변화에 적응해 스스로 발전하기도 하고 사라지기도 하고 또 새롭게 생겨나기도 하는데, 저자들은 이것을 시침과 초침에 비유한다. 생물이 사라지고 생겨나고 발전하는 진화의 과정은 매우 느리고 거대하므로 시계 시침의 움직임처럼 눈으로 포착되지 않아야 마땅한데, 지금은 그 변화가 마치 초침처럼 우리 눈에 보일 정도로 생태계가 망가져 있다는 것이다.


저자들은 각각 생물학과 경제학 분야의 전문가로서 바로 지금이 생물 멸종의 ‘티핑 포인트’라는 데 목소리를 같이한다. 양동이에 물이 꽉 차 있을 때 한 방울만 더해도 넘치게 되듯이, 멸종하는 종이 한 종만 더 추가되어도 생태계가 순식간에 극적으로 무너질 수 있다는 뜻이다. 과학자들은 언제 어디서 티핑 포인트에 도달할지 전혀 예측할 수 없어서 더 문제라고 보고 있다.


이러한 상황인데도 우리는 종들이 생태계에서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지 모르는 채 맹목적으로 종들을 멸종시키고 있다고 저자들은 말한다. 이렇듯 “우리 주변의 모든 것을 가까스로 유지하고 있는 그 최후의 한 종이 언제 사라질지는 아무도 모른다”는 급박함 속에서, 책은 생물 다양성이 우리 삶을 얼마나 단단하게 떠받치고 있는지 그 요모조모를 구체적인 실례와 수치를 통해 가시화해 보여 주며 변화를 촉구한다.


“인간이 없어도 지구는 잘 돌아간다”라는 말은 강력한 환경 슬로건으로 자주 쓰인다. 자정 능력을 가진 위대한 자연에 비하면 인간은 하찮은 존재라는 자조적인 성찰이 담겨 있다. 인간이 아무것도 하지 않을수록 자연이 원상회복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 말은 아마도 과학적으로 합당할 터이고, 이 책의 저자들 또한 “지구의 긴 역사를 고려할 때 인간은 ‘생태계를 교란하는 어떤 한 존재’에 불과하고 지금 생태계와 생물 다양성이 그 인간에 그저 반응하고 있는 것이라고 볼 수도 있”음을 인정한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인간이 인간의 미래를 포기할 수는 없다는 점이라고 강조한다. 이때 ‘인간의 미래’에서 아주 중요한 한 축이 바로 생물 다양성이다.


그래서 이 책은 자연에게도 인간과 동등한 권리가 있으므로 인간이 자연을 ‘착취’해서는 안 된다는 원론적인 입장을 접어 두고, 어떻게 하면 인간이 생물 다양성을 보존해 우리 자신의 미래를 지킬 것인지 이야기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연에 가격표를 다는’ 위험까지도 감수해야 한다고 말한다. 현재의 생물 다양성과 생태계가 인간의 경제 활동에 실제로 얼마나 큰 지분을 차지하고 있는지, 그것이 막연한 추측이 아니라 명명백백한 수치로 이미 증명되고 있다는 사실을 드러내야만 우리 모두 경각심을 갖고 생물 멸종을 막기 위해 본격적인 행동에 돌입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이 과정은 개인의 도덕성에만 의존해서는 불가능하다고 저자들은 단언한다. “자연을 위해 자연을 보존하자는 생각은 정치적·경제적 의사 결정 과정에 반영되기에는 많이 부족하”며, “공기와 물 같은 공공 자원의 가치는 물론이고 나아가 이 공공 자원을 과도하게 이용할 때 치러야 하는 대가까지 철저하게 내면화한 사람이 정치와 경제 분야에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생물학과 경제학이 통합된 관점에서만 나올 수 있는 매우 현실적이고 통렬한 자각으로서, 이에 따르면 생물 다양성이 가져다주는 ‘생태계 서비스’에 합당한 가치를 매기는 것, 즉 자연에 가격표를 다는 일은 반드시 필요하다.


현재 지구상의 가장 큰 난제라고 여겨지는 ‘기후 위기’를 참조해 보자면, 기후변화를 부르는 이산화탄소 배출의 대가는 추가 세금으로든 탄소배출권 거래제로든 경제적으로 가시화되어 있는 편이다. 


이와 달리 생물 다양성과 생태계 서비스는 어느 정도의 금전적 가치를 지니는지 여전히 구체적으로 체감할 수단이 부족하다. 이 책이 하려고 하는 일 가운데 하나가 바로 그 수단을 만드는 것이다.


책은 생물 다양성이 갖는 여러 측면의 의미부터 시작해 현재의 멸종 위기 현황을 거쳐, ‘생태계 서비스’라고 명명하기에 충분한 생물 다양성의 풍성한 경제적 가치들을 두루 살펴본다. 아울러 자연에 가격표를 다는 일의 딜레마와, 우리가 개인·단체·사회 및 국가 차원에서 당장 실현해야 할 과제들을 알아본다.


저자들은 풍부한 실제 사례와 통계 등을 통해 인간의 삶이 어떻게 ‘조직적으로’ 생태계에 빚지고 있으며, 이것들을 경제적 가치로 환산했을 때 어느 정도의 액수인지, 실제로 생물이 멸종되고 생태계가 파괴될 때 그 역할을 인간의 기술과 노동 및 자본으로 대체하는 것이 과연 가능할지, 가능하다고 해도 결과적으로 얼마나 큰 손해를 불러올지 시종일관 명쾌한 어조로 이야기한다.

 

1.jpg


우리가 먹는 모든 음식은 당연히 다양한 생물들로부터 온다. 그런데 우리는 이 모든 식량들을 제대로 누리지 못하고 있다. 예를 들어 지구상에는 식물 38만 2000종이 살고 있고 그 가운데 20만 종이 식용 가능하다고 추측되는데, 그중에서 우리가 대량으로 재배하며 주로 먹고 있는 것은 많아야 150종에 불과하다. 

 

축산은 말할 것도 없다. 세계적으로 단 40종의 축산이 이루어지고 있는데, 그중 다섯 종(돼지, 소, 양, 염소, 닭)이 고기, 우유, 달걀의 대부분을 생산한다. “곧 90억 명에 이를 세계 인구를 어떻게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먹여 살릴지에 대한 소박한 하나의 대안”으로서 곤충의 가능성에도 더욱 주목해야 한다.


생물 다양성은 우리를 위해 물과 공기를 정화해 주고 기후를 조절해 주며 병원균을 막아 준다. 양서류를 비롯해 독을 가진 많은 생물들에 대한 연구로 증명된 것처럼 자연은 “그 어떤 거대 제약 회사도 상대가 되지 않는” ‘야생 약국’이기도 하다. “열대우림이든 산호초든 건조한 초원이든 저 밖의 어딘가에서 항생제 내성, 당뇨, 암, 심장병에 대한 해결책이 넘쳐 나고” 있다.


생태계는 거대한 이산화탄소 저장고 기능을 하므로 기후변화를 완화한다. 또한 기후변화로 인한 홍수, 폭풍, 산사태 같은 자연재해의 위험, 깨끗한 물과 토지가 사라지는 위험도 줄여 준다. 


특히 온대지방의 습지, 열대지방의 맹그로브 등 ‘꿈의 생태계’의 역할이 큰데, 2017년 허리케인 어마(Irma)가 미국 플로리다 해안을 강타했을 때, 맹그로브가 당시 15억 상당의 피해를 막고 62만 6000명을 재난의 위험에서 보호해 준 바 있다.


2050년까지 세계 인구의 거의 70%가 도시에서 살게 될 거라고 한다. 도로 포장을 최소화하고 콘크리트 대체재(나무, 짚 등) 건물을 늘리면 홍수로 인한 물 재난을 막고 모래 부족으로 인한 생태계 파괴도 막을 수 있다. 


도시 곳곳에 정원과 녹지를 조성한다면 그 어떤 인공 시설보다 더 효율적으로 공기를 정화하고 열기를 식힐 수 있다. 런던에서 있었던 어느 연구는 공원과 그 주변 건물들 사이 온도 차가 3℃에서 밤에는 4℃까지 벌어짐을 증명하기도 했다. 나무와 넝쿨 식물들은 인간의 건강에 치명적인 도시의 소음 또한 잘 삼켜 준다.


“인간은 지구상에 가장 넓게 분포해 있는 ‘큰 동물’일 뿐만 아니라 가장 많이 돌아다니는 동물”이다. 다시 말해 인간 여행자가 “돌아다니는 생물 다양성 파괴자”라는 뜻이다. 이들 탓에 해안 및 산악 생태계가 파괴되고 바이러스가 옮겨진다. 


지나치게 풍족한 특산물 식사로 인해 귀한 생물의 씨가 마르며 어마어마한 양의 음식이 버려진다. 그러나 현대사회에서 여행 산업은 곧 경제발전의 동력이기 때문에, 우리는 최대한 자연을 해치지 않으며 체험할 수 있는 ‘영리한 여행 콘셉트’를 개발해야 한다.


2018년 세계 인구가 사용한 에너지는 1만 4301Mtoe(석유환산메가톤)으로, 2010년 기록의 두 배이며 매년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미생물과 동식물은 에너지를 얻고 전환하고 저장하는 정교한 과정들을 개발해 냈고, 우리 인간은 그 혜택을 갖가지 방식으로 누리고 있다. 


그중에서도 태양에너지를 이용한 식물의 광합성에서 모든 생명 활동이 시작되는데, 인간은 이를 인공적으로 모방하기 위해 연구를 거듭해 왔으나 아직 절대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끝없이 에너지를 만들어 내는 자연을 필요 이상 파괴하지 않는 것, 현재의 에너지 사용 비율(석유 31%, 석탄 26%, 천연가스 23%, 바이오매스와 쓰레기 재생 10%, 원자력 5%, 수력 3%, 태양과 풍력 2%)에서 태양열, 풍력 등 자연에너지의 비율을 꾸준히 늘려 가는 것만이 에너지 효율을 높일 방법이다.


자연과 기술은 언뜻 보기에 서로 정반대처럼 보이지만 사실 자연 속에는 다양한 생태학적 전문가들이 숨어 있고 우리는 이들을 기술적으로 모방해 왔다. 그것이 ‘생체공학’이라는 학문 영역을 낳기도 했다. 


오래전 인류가 조류를 모방해 비행기를 만들고 어류를 모방해 잠수함을 만들었듯, 바닷물에서 미세 플랑크톤을 걸러내 먹는 해양 생물들의 고유한 ‘필터’, 방수 및 코팅 효과가 있어서 오염 물질을 흡수하지 않고 미끄러뜨리는 연잎, 외부 온도로 가죽이 아무리 뜨거워져도 체온을 유지할 수 있게 하는 물개의 털 등 다양한 생물들의 놀라운 능력에 대해 현재도 활발한 연구와 적용이 이루어지고 있다.


“아무 일 아닌 듯, 완벽하게, 아름답게” 우리를 살리는 생물들에는 모두가 경탄해 마지않는 ‘멋진’ 생물은 물론이고, 평소 해충으로만 여겨지는 모기마저 포함된다. 수천 종의 모기와 그 수백만 개체들은 조류, 작은박쥐류, 어류, 파충류, 양서류의 중요한 먹이로서, 저자들은 모기가 사라진다면 그중 몇몇 종도 따라서 멸종할 정도로 모기의 역할이 중대하다고 말한다. 


그 뿐만 아니라 모기는 수많은 유용식물의 수분(受粉)을 담당하고 있는데, 예를 들어 좀모기가 없다면 우리는 카카오꽃을 수분시킬 수 없고 따라서 초콜릿을 먹을 수도 없다. 이와 같은 많은 예시들을 읽어 나가다 보면, 아무리 하찮게 여겨지는 생물이라도 저자들이 말하는 ‘생명의 월드와이드웹’에서 없어선 안 될 역할을 하고 있으며, 우리 인간 역시 그 명백한 수혜자임을 알게 된다.


2.jpg


가만히 앉아 있습니다  

김재윤 지음, 상상 펴냄

 

벽이 벽에 갇혀 있다

벽은 벽을 타고 벽을 오른다


벽이 혼자 밥을 먹는다

벽은 고독하고 고독은 벽을 만든다


벽이 벽에게 말한다

벽은 말을 만들고 말은 벽이 된다


안의 벽은 밖의 벽을 그리워하고

밖의 벽은 안의 벽을 지향한다


벽 안의 나는 찬란하고

너는 쓸쓸하다


나는 자유롭고

사랑은 갇혀 있다

- '벽' 전문


고 김재윤 시인의 1주기를 맞아 출간된 이 책은 뜨겁게, 올곧게 세상을 위했던 시인의 삶과 고통 그리고 시인이 온전히 품고 있었던 희망을 정갈한 언어로 담고 있다. 


시집 속에서 자주 만나게 되는 '방'과 '벽'은 시인을 가두는 고통과 고독이다. 시인은 압도당하고 짓눌리면서도 고른 말들로 울고, 견디며 독자들에게 가닿는다. 독자들의 좌절과 우울이 밖으로 나와서 시를 만날 수 있게 한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시인은 '수국, '홍매화, '칡꽃'과 '귤꽃' 등 많은 꽃들과 '나무'와 '눈, '강'과 '바람'으로 어둠을 걷어내고 자유를 만나고자 한다. 


시인은 “새까맣게 타버린 가슴에 마법처럼 분꽃”이 핀다고 한다. 시인은 좌절과 우울의 '새까맣게 타버린 가슴'으로, 혼자의 자유가 아닌, 지구'의 자유를 노래한다. 그의 시는 세상과 만나기를 가장 순수한 모습으로 염원한다. 


그는 시인의 말에서 “먼저 일어나 촛불을 드는 사람”, “자신을 태워 촛불이 되는 사람”을 시인이라고 했다. 그의 촛불은 고통스럽지만 아름답고 섬세하다.


안도현 시인은 “그의 원고는 붉은 불꽃과 하얀 연기 사이의 광채를 보는 눈을 가지고 있었다”고 말했다. 또 “현실의 고통을 봄볕에 말린 냄새가 난다”고 덧붙였다. 그의 시는 세상의 어두운 곳, 고통이 많은 곳에서 독자들에게 말을 건네고자 하는 열정이다. 함께 이야기하고 울고 춤추고자 하는 사랑이고 자유다.


안 시인은 “벽 안에 갇혀 혼자 밥을 먹던 시간, 그는 외로움의 간격을 재고 몸 안으로 방을 들였다”고 시인 김재윤의 삶을 읽었다. 


아울러 시인이 '붉은 불꽃과 하얀 연기 사이의 광채를 보는 눈'으로 세상을 받아들였고 그래서 아름답고 통찰력 있는 시를 남겼음을 알려주고 있다. 


안 시인은 그의 시가 좌절과 우울과 자기모멸에도 현실을 외면하지 않고 시와 사람을 꿈꾸었던, “현실의 고통을 봄볕에 말린 냄새가 나는 시”임을 다시 한 번 당부하듯 증언한다. 이를 위해 짊어져야 했을 고통과 고독의 무게를, 시인은 광채를 보는 통찰력으로 이해하고 견뎠을 것이라고 말한다.


아카시아꽃으로 향을 피우고 제祭를 올렸다

읽어도 읽어도 끝나지 않는 제문祭文을 읽느라

현기증이 났다

‘유세차維歲次’는 있는데 ‘상향尙饗’이 없다니

그녀가 달려왔다

내 손에서 제문을 빼앗아

돼지를 삶고 있는 장작불에 태우고

내게 입맞춤했다

나는 검은 관에서 일어나 시를 읽었다

그녀는 산수유로 내 몸을 씻기고

새 옷을 입혀줬다

칡꽃은 그녀와 나의 봄을 휘감아

하늘을 지향했고

나는 그녀가 부르는 노래에 맞춰

움직이기도 하고 멈추기도 했다

그녀는 내가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안아달라 했다

천리향에 취해 얼굴이 불콰한

나비의 날개가 하늘에 닿고

대지에 발을 내딛기 위해 겨울을 견딘

달팽이의 뿔도 하늘에 닿았다

- '시를 읽다' 전문


김재윤 시인은 시를, 세상을 열렬하게 사랑했다. 읽어도 읽어도 끝나지 않는 제문을 읽다가 느끼는 현기증은 삶을 가로막는 도저한 죽음과 우울의 세계다. 세계의 어둠에 대한 시인의 깊은 이해이자 연민과 좌절이다. 


검은 관 같은 닫힌 방에서 시를 쓰고 읽고 다시 읽고 쓰는 시인의 모습과 겹쳐진다. 끝나지 않을 것 같은 긴 시간을 견디는 그가 보인다. 그때 그녀가 달려와 제문을 빼앗아 장작불에 던져 불태워 버린다. 그녀는 그를 꺼내 씻겨주고 그를 열리게 한다. 


김종훈 고려대 국문과 교수는 ‘방’의 의미를 고독, 소통, 기억에 대응하는 자아와 화자의 조응으로 섬세하게 읽어 내며, 김재윤 시인이 이룬 시적 성취를 높이 평가한다. 독자들이 그의 시를 통해 '그의 고독'과 '공적인 삶에 휩쓸리는 동안 상처받는 내면'에 공감하고 위로 받으며, 자신의 고독과 고통과 좌절을 그리고 희망을 돌보게 될 수 있을 것이라고. 

 

4.jpg

 

소녀무녀 봄 : 청동방울편

레이먼드 조 지음, 안타레스 펴냄


무속인들 사이에서 ‘신이 내린 씨’라 불리는 소녀무녀 봄. 압도적 신기를 타고난 봄에게 매년 정재계 인사들의 방문이 줄을 잇지만, 아직 어린 소녀인 봄에게는 많은 것이 결핍되어 있다.


어느 날 종문중학교에서 송채영이라는 여학생이 독살당하는 ‘실험실 살인사건’이 벌어진다. 사건을 맡게 된 성북경찰서 강력계 2팀 이형사의 능력은 영혼을 볼 수 있다는 것. 자신의 초자연적 능력이 수사에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지만, 이형사는 더이상 귀신을 보고 싶지 않다. 어둠 속에서 불쑥 튀어나오는 영혼을 볼 때마다 참담하기만 하다.


한편 종문중학교에는 텃밭부로 위장한 비공식 동아리가 있다. 소희와 예하가 만든 종문탐정단. 하지만 다른 학생들 눈에는 중2병에 걸린 또라이 아싸에 왕따들일 뿐이다.


논리적 추리만을 믿는 여중생 탐정과 신들린 무당 소녀 그리고 과학과 무속의 경계에서 사건을 해결해야 하는 형사. 그들 각자는 저마다의 이유로 ‘실험실 살인사건’의 진실을 파헤치기 시작한다.


한번 읽기 시작하면 중간에 끊기 어려울 만큼 흡인력 강한 소설이다. 저마다 개성 넘치는 등장인물들이 퍼즐처럼 엮여 있어 점점 더 궁금해지고, 문장을 읽는 순간 머릿속에서 영상이 재생될 정도로 장면 묘사가 탁월하다.


이 책은 총 3부작 옴니버스 시리즈로서 이번 ‘청동방울편’이 제1부이며, 제2부 ‘청동거울편’과 제3부 ‘청동검편’까지 각각 완결된 이야기 형식으로 작품을 이어나간다. 


커버 및 캐릭터 일러스트는 넷플릭스(Netflix) 오리지널 애니메이션 시리즈 「러브, 데스 + 로봇」 시즌 1 ‘굿 헌팅(Good Hunting)’으로 제71회 에미상(Emmy Award)을 받은 애니메이터 김준호 감독이 직접 그렸고 향후 작품에도 참여한다.


귀신 잡는 소녀와 귀신 보는 형사, 그리고 똘끼 충만 엉뚱 발랄 소녀 탐정단 앞에 무슨 일이 생길까. 웃기고, 무섭고, 슬프고, 흐뭇한 이야기. 삶이 완벽하길 바라지만 그럴 수 없음을 아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