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의 비건지향] 육식주의 사회, 거짓된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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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의 비건지향] 육식주의 사회, 거짓된 사회

[지데일리] 건강상의 이유로든 기후위기에 대응하기 위해서든 고통받는 동물을 외면하지 않기 위해서든, 저마다의 이유로 채식을 지향하는 사람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채식은 이제 자연스러운 라이프 스타일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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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xabay

 

<불완전 채식주의자>(정진아 지음, 허밍버드 펴냄)의 저자는 본인을 ‘육식주의자 그 자체’였다고 소개한다. 어릴 적에는 소의 생간과 날달걀을 즐겨 먹었고, 성인이 되어서는 삼겹살에 소주가 최고의 힐링이었던 평범한 입맛의 소유자였다. 

 

그랬던 저자가 고기를 끊기로 다짐한 건 동물 학대와 공장식 축산업의 실태를 자세히 알게 된 이후였다. 특히 2010년 말 350만 마리의 가축이 산 채로 잔인하게 살처분됐던 구제역 파동은, 고기가 ‘음식’이 아닌 ‘숨이 붙은 생명’이라는 걸 머릿속에 강하게 각인시킨 계기가 됐다.


이로써 동물의 ‘삶’에 관심을 갖고 동물권활동가의 길을 걷게 된 저자는 인간의 삶 곳곳에서 다양하게 벌어지고 있는 동물 착취를 소개하며 자신이 자연스럽게 채식의 길로 들어섰음을 밝힌다. 


최단시간에 급속도로 몸집을 키우는 과정에서 체중을 이기지 못해 다리가 부러지는 닭, 화장품 안정성을 판별하기 위해 눈이 짓무르고 실명할 때까지 실험당하는 토끼, 발 딛기도 힘든 비좁은 철창에서 살다 고통 경감을 위한 어떤 복지도 고려되지 않은 채 도살당하는 개, 질 좋은 모피를 얻기 위해 잔인하게 사냥당하는 어린 하프물범까지. 동물이 겪는 고통에 인간으로서 미안했고, 그래서 채식을 택했다.


그러니 저자의 채식 지향은 단순한 식생활에 그치지 않는다. 다른 존재가 고통받지 않길 바라는 윤리적 결단이자, 자신의 행동이 지구에 조금이라도 선한 영향력을 미치길 바라는 진심 어린 마음이다. 비록 완전 채식으로의 도전은 거듭 실패하고 있지만, 식재료에 대한 윤리적 고민은 삶을 평화적으로 확장해 나가는 밑거름이 되고 있다.


‘채식주의자’나 ‘비건’이 되기로 선뜻 마음먹기란 쉽지 않다. 채식주의자를 유별난 사람으로 취급하는 사회적 시선 때문에, 혹은 도저히 고기를 끊을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아서다. 채식을 시작한 지 10여 년 만에 채식의 유행을 맞이한 저자 역시 그간 자의에서건 타의에서건 숱한 위기의 순간이 있었음을 고백한다.


채소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채식주의자가 되기로 다짐한 건 그 자체로 큰 도전이었다. 신념 때문에 채식을 지향하고 있지만 다짐을 지키지 못하고 고기를 먹은 날이면, 자신에 대한 실망과 죄책감, 자괴감으로 괴로워했다. 


남들에게 채식을 한다고 밝힌 뒤 “생선은 안 불쌍해?”, “그거 육수 아니야?” 식의 무례한 질문을 받을 때면, 자신의 선택에 대해 정당성을 입증해야 한다는 압박감을 느꼈다. 채식이 하나의 유행이 된 시대라지만 타인의 시선에 휘둘리지 않고 중심을 잡기란 꽤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저자는 포기하지 않고 나아가기로 했다. 무결함 대신 꾸준함을 무기로, 다른 존재를 위해 고민하는 삶을 더 열심히, 더 오래 지속해 나가기로 했다. 그리고 자신과 같이 ‘애매한 윤리 의식과 적당한 비겁함에 자책을 연발하면서도 동물과 지구에 해를 덜 끼칠 방법을 계속 찾아 헤매는’ 이들에게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살아보자고 권한다.


식재료에 대한 저자의 고민은 나날이 확장되어 가는 중이다. 해산물이라도 낙지를 산 채로 뜨거운 물에 끓이는 것처럼 조리 방식이 지나치게 잔인해 동물에게 고통을 유발한다면 섭취를 자제하고, 우유와 달걀도 공장식 축산업에 따른 착취의 결과물이므로 최대한 줄이려 노력한다. 


우유 대신 아몬드나 귀리 등으로 만든 식물성 우유를 선택하고, 달걀을 직접 구입하는 경우에는 ‘난각표시제’에 따라 동물복지 달걀인지를 꼭 확인하는 식이다.


동물의 고통을 줄이기 위한 저자의 노력은 식생활 바깥에서도 이어진다. 음식을 생존 수단이 아닌 유희의 도구로 삼는 ‘먹방’을 거부하고, 동물실험을 한 화장품이나 동물성 소재를 사용한 의류를 소비하지 않는 등 동물을 희생시켜 얻은 결과물을 최대한 멀리한다. ‘비거니즘’이라 일컫는 삶의 방식이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비거니즘을 추구하는 식탁에도 윤리적 딜레마는 존재했다. 태국의 코코넛은 원숭이를 학대하고 착취해 수확한 결과물이었고, 채식 메뉴에서 자주 쓰이는 아보카도는 산림 벌채와 지하수 고갈 문제를 불러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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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동물의 희생이나 착취에 반대하기 위한 선택이 또 다른 종류의 피해를 가져다주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며 당혹스러웠지만, ‘그럼에도 삶이 이어지는 이상 무언가를 선택하는 일은 결코 멈출 수 없다’고 고백한다. 


비록 지금은 신념을 바탕으로 한 지향점이 충돌하고 있지만, 비거니즘이 모두에게 평범한 일상이 되는 날이 오면 정답이 없을 것 같던 질문에 대한 답도 찾을 수 있을 거라는 믿음으로 말이다.


패스트푸드에서 햄버거를 광고하며 ‘청정자연’과 ‘소’를 연결 짓고, 족발집과 치킨집 마스코트로는 돼지나 닭 캐릭터가 사용되는 사회. 우리의 인식 속에서 고기와 살아 있는 동물 간의 연결고리를 철저히 단절시킨 사회. 


이 책은 육식주의 사회가 그리는 교묘하고 거짓된 사회를 경계한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육식의 세계는 보다 사회적 시선에서 다뤄지기도 한다. 바로 힘과 권력에서 비롯되는 학대, 폭력, 착취의 관계성, 그리고 페미니즘이다.


저자는 공장식 축산 시스템에서 재생산력을 착취당하는 암컷 동물과 가부장제 사회에서 사회 유지를 위해 임신과 출산을 강요당하는 인간 여성의 삶에 동질감을 느낀다. 한편 폭력에 노출된 길 위의 약한 동물들이나 인간이지만 마찬가지로 약자로서 혐오의 대상으로 전락해 버린 ‘캣맘’의 일상을 통해 동물과 약자, 동물과 인간 여성 사이에 형성된 강력한 유대감을 확인한다. 


결국 동물을 존중하는 일은 인간의 삶을 살피는 일이기도 했다. 다른 존재의 고통을 줄이고자 노력하는 삶의 방식인 비거니즘이, 인간과 비인간 동물을 떠나 모든 존재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이유다. 저자에겐 비거니즘이 곧 페미니즘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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