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영의 젠더풀월드]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노오력'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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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영의 젠더풀월드]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노오력'한다는 것

젠더는 사랑, 결혼, 가족 구성, 출산, 양육, 노령화를 포함한 사적인 영역부터 경제, 종교, 정치, 미디어, 학교 등 공적 영역에 이르기까지 강력하게 작동하는 ‘체제’다. 젠더는 인간을 여성과 남성이라는 두 범주로 구분하기도 하지만, 사회를 구성하는 원리로도 작동한다. 이렇게 젠더 이분법이 만드는 사회가 성별화된 사회(gendered society)다. 본지는 당연하게 여겨지던 이러한 이분법에 의문을 던져보고, 여성과 남성 모두를 위한 젠더 관점의 고민과 방향을 담은 저작을 소개한다. <편집자주>

N번방 사건의 피해자는 물론 가해자 중에도 학령기 아동·청소년이 있다는 이야기에 교육계 안팎이 발칵 뒤집혔다. 

 

각계각층의 성폭력 사건과 함께 교육이 이대로 괜찮은가라는 질문과 교육의 실패와 문제라는 비난이 쏟아졌고 다음세대를 제대로 길러내자는 교육의 목적을 새로이 하고자 하는 목소리가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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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사베이


교육으로 개인의 성평등 의식을 고양할 수 있을까. 별 고정 관념을 버리고 ‘나다움’을 찾는 것으로 충분할까. 오늘날 페미니즘 교육의 의미는 무엇인지 다시 묻는다. 


페미니즘 교육은 성폭력, 여성혐오 문제의 대안으로 대두되고 있다. 그렇다면 페미니즘 운동의 성과로 제도화되고 꾸준히 수행돼 온 성희롱·성폭력 예방 교육과 양성평등교육은 왜 페미니즘 교육이 되지 못했는지 의문이다.


개인이 특정한 행동을 하지 않도록 행실과 태도를 변화시키는 것이 페미니즘 교육의 궁극적인 목적인지 질문해 봐야한다. 


오늘날 성평등교육은 성별 고정 관념 해소와 ‘나답게’ 살기 등 개인의 변화를 강조하는 데 치우쳐서, 교육 체제의 문제와 불평등한 구조를 제대로 다루지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


사회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교육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되고, 특히 폭력에 대해서는 잘못에 포함되는 행위의 범위를 늘리고 개인의 의식을 변화시키는 방안만이 활발하게 논의된다.


페미니즘 교육 의무화를 주장하는 목소리에도 교육을 통해 개인을 계몽할 수 있을 거라는 통념이 자리 잡고 있다. 


지식과 현실이 괴리된 환경 속에서 페미니즘 교육의 출발점은, 교육이 성평등을 어떻게 상상하고 사유하게 만드는 공간이 될 것인지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오늘날 학교에서 이뤄지는 성평등 관련 교육들은 여러 문제점을 안고 있다. 그중 주목되지 않았으나 중요한 측면은 성차와 성평등을 사회 정치적 의제가 아닌 개인의 능동적인 자기 관리의 대상으로 놓는다는 점이다. 

 

대표적인 예는 성차별을 다룰 때 그 역사와 구조를 다루지 않고 ‘성 역할 고정 관념’이라는 개념으로 축소해 개인이 극복해야 할 것으로 다루는 것이다. 취업, 출산, 양육 등 삶의 중요한 사건을 둘러싼 계급적이며 성별화된 맥락은 사라진다. 


이는 능동적인 자기 계발을 통해 경쟁력을 갖춘 개인을 이상적 시민으로 바라보는 시장화된 교육의 이념과 동일시한다. 남성과 다른 여성의 차이가 여전히 불평등으로 이어지고 있음에도 페미니즘 때문에 남성이 차별받는다는 논리가 성립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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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 교육, 이제는 한 단계 나아가야 할 때다. <페미니즘 교육은 가능한가>에서 엄혜진은 책 전체를 아우르는 문제의식을 개괄하여 현재 왜곡되고 있는 페미니즘 교육의 논점과 출발점을 제시한다. 

 

그는 페미니즘의 모범 답안이 이미 정해놓고 정서적 공감에 치중하는 반지성주의적 경향이 교육자와 학습자 양자에 의해 벌어진다고 지적한다. 


성차별적 구조를 다루지 않는 학교 성평등교육의 내용과 형식적이고 무책임한 관리 체계 속에서 교육 주체들이 방치됐다고 밝힌다. 


김서화는 학교의 잠재적 교육과정인 학교폭력 규율 체계, 정신 건강 관리 체계 속에 성적 차이와 성평등의 의미가 어떻게 구축되고 있는지를 알려준다. 김수자는 대안학교에서의 페미니즘 교육 실천 경험을 바탕으로 갈등과 긴장을 배움과 성장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말한다.


페미니즘 교육은 불온하다. 신그리나, 김서화, 김수자의 세 글이 학교라는 공간을 둘러싼 논의를 다뤘다면 다음의 네 글은 학교 안팎의 문제를 넓게 보여준다.


최기자는 대상을 ‘잠재적 가해자’로 상정하고 처벌 양형만을 강조하여 시민을 관전자로 훈련시키는 젠더폭력 예방 교육과 위험만 주지시키며 여성을 공적 공간에서 배제하는 젠더폭력 예방 정책의 역효과를 밝힌다. 


윤보라는 성폭력 예방의 테두리 안에서만 젠더에 대한 논의가 이뤄지는 디지털 리터러시 교육을 성적 차이에 대한 존중을 포함한 디지털 시민성을 함양하는 장으로 확장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한다.


이진희는 ‘프로아나’와 ‘탈코’라는 대극적 현상에 주목해 ‘나답게’ 교육을 넘어 성적 차이를 가진 인간들이 공존하기 위한 성평등교육으로의 전환을 제시한다. 


임국희는 현재 성평등교육에서 데이트 폭력, 임신 등 위험으로만 표상되고 있는 친밀한 관계에 대한 교육이 참여자로 하여금 자신의 생애 과정을 구체적으로 상상하며 개인에게 지워진 의무가 아닌 시민적 덕목으로서 돌봄을 함께하는 교육으로 거듭날 것을 제안한다.


여덟 편의 글 전체를 아우르는 공통점은 남성과 다른 여성의 차이를 부정하지 않고 어떻게 온전히 여성을 시민으로서 대우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의 열쇠를 교육으로부터 찾고있다.


신자유주의 시대의 개인들은 형식적으로 평등해 보이지만, 실상 이상적인 남성 시민의 상에 가까워지기 위해 끊임없이 자기 계발을 하도록 교육받는다. 체제의 기반이 되는 ‘시민’의 정의를 흔든다는 점에서 페미니즘 교육은 필연적으로 정치적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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