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명품'의 문제적 삶을 말하다
상태바
그 '명품'의 문제적 삶을 말하다
  • 한주연 기자
  • 승인 2019.07.2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불과 반세기 동안 그토록 많은 목숨을 앗아간 무기는 역사상 없었다. AK47은 초강대국 냉전의 대리전에서 가장 위력을 떨쳤다. 인류가 발명한 가장 강력한 무기인 핵폭탄이 절멸의 위협 때문에 초강대국 간의 전쟁을 억제했다면, 대리전의 주력 무기였던 AK47은 그 치명적인 살상력으로 전쟁의 면모를 바꾸었다. 아니, 소수의 선진국을 제외한 세계 전체의 현대사를 변모시켰다. 무엇보다 비극적인 것은 전 세계의 77명 중 한 명이 가지고 있는 이 개인용 대량 살상 무기를 환수해서 파기할 방법이 없다는 점이다.

“나는 내가 만든 발명품이 자랑스럽지만 테러리스트들이 그 총을 사용하는 것은 유감입니다. 사람들이 사용할 수 있는 기계, 농부의 작업을 돕는 기계, 예컨대 잔디 깎는 기계를 발명했더라면 더 좋았을 겁니다.” - AK47 소총을 발명한 칼라시니코프

AK47 돌격소총은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다. 베트남 참전군인들의 무용담에 단골로 등장하는 전설적인 총이었다. 한국군은 베트남에서 처음 M16을 지급받았는데, 무더운 이국땅의 진창에 굴러도 흙만 툭툭 털어내면 곧바로 발사 가능한 적군의 AK47은 고장이 잦은 미군의 최신형 총기보다 믿음직스럽게 보였을 것이다. 

비단 한국군에게만 적용되는 것도 아니었다. 베트남전에서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2003년 이라크전의 미군들도 비슷한 상황에 놓였다. 

AK47 돌격소총은 지구상에서 가장 널리 퍼진 살상도구로 자리를 잡았다. 내구성, 저렴한 가격, 조작 편리성, 살상력 등에서 다른 어떤 총도 범접하지 못한다. 적군과 테러리스트뿐만 아니라 제3세계의 소년병에서 거리의 갱들의 손에 들린 무기이자 모종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전쟁을 겪지 않았어도 저녁 뉴스를 챙겨보는 사람이라면 이 총을 알아볼 수 있을 정도다. 

1949년 소련군이 처음 보병 기본 화기로 공식 채택한 순간부터 AK47은 작동이 간단하고 튼튼하며, 아무리 열악한 환경에서도 믿음직하고 대량생산이 가능하며 값도 싼 총기로 명성을 떨쳤다. 총기의 기본인 신뢰성과 살상력에 가장 충실한 ‘명품’이었다. 

하지만 AK47이 '세계에서 가장 많이 사용된 무기'로 기네스북에 등재된 데는 이런 기술적 장점 외에도 정치적 요인이 작용했다. 미국과 대결하는 냉전 상황에서 소련은 사회주의권 나라들뿐만 아니라 제3세계 비동맹국가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AK47의 특허를 주장하지 않았고, 설계도면까지 무상으로 배포했다. 

불가리아, 중국 등에서 생산된 저렴한 가격의 정품이 불티나게 팔려나가는 한편, 세계 각지에서 복제품이 우후죽순처럼 쏟아져 나왔다. 현재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AK는 9000만~1억 정을 헤아리는데, 절반 이상이 소련 바깥에서 생산된 것이고, 또 정품이 어느 정도인지는 제대로 파악조차 되지 않는다. 전 세계 소형화기의 5분의 1이 AK이고, AK가 전체 돌격소총의 절반을 넘는다.

<AK 47>은 냉전 시대 현대사의 매우 모순적인 상황을 AK를 통해 그동안 미처 잘 알지 못했던 사실들을 보여주고 있다. 매년 25만 명의 목숨을 앗아가는 진정한 대량 살상 무기인 AK47을 둘러싼 역사적·전술적·정치적 이야기다. 아울러 냉전의 가장 파괴적인 유산으로서 AK47이 20세기 중반 이후 전 세계의 군사, 정치, 사회, 그리고 대중문화에 미친 영향까지 돌아본다. 

가장 흥미로운 것 중 하나는 AK에게 아군과 적군이 따로 없다는 점이다. 1979년 소련은 군사력으로 아프가니스탄을 장악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아프가니스탄의 전사들(무자헤딘)은 소련의 침략에 맞서기 위해 미국에 이 총기를 달라고 요청했으며 미국은 이를 승인했다. 

미국의 지원으로 AK로 무장한 아프가니스탄의 무자헤딘은 소련을 물리칠 수 있었다. 1991년 소련이 붕괴했고, 이 AK들은 무자헤딘에서 알카에다의 손으로 옮겨갔다. 알다시피 911테러 이후 이 AK들은 소련이 아닌, 즉 미국을 겨냥하게 된다.

아프리카, 아시아, 남아메리카, 중동의 ‘작은 전쟁’만이 아니라 많은 나라의 국내 범죄에 이르기까지, “국제적 반군과 테러리스트부터 국내의 마약상과 거리 갱단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비정규 전투부대”가 AK47을 휘둘렀다.

불과 반세기 동안 그토록 많은 목숨을 앗아간 무기는 역사상 없었다. AK47은 초강대국 냉전의 대리전에서 가장 위력을 떨쳤다. 인류가 발명한 가장 강력한 무기인 핵폭탄이 절멸의 위협 때문에 초강대국 간의 전쟁을 억제했다면, 대리전의 주력 무기였던 AK47은 그 치명적인 살상력으로 전쟁의 면모를 바꾸었다. 아니, 소수의 선진국을 제외한 세계 전체의 현대사를 변모시켰다.

무엇보다 비극적인 것은 전 세계의 77명 중 한 명이 가지고 있는 이 개인용 대량 살상 무기를 환수해서 파기할 방법이 없다는 점이다. 냉전 직후 사회주의권에서 제3세계로 쏟아져 나오면서 한때 6달러까지 가격이 떨어진 이 총은 닭 한 마리 가격이라고 ‘치킨건’이라는 별명까지 붙었다. 지금은 AK의 가격이 분쟁 지역의 사회 안정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지표로 통하기도 한다.

한때 해방과 혁명, 자유의 상징이기도 했지만, 정작 AK가 그 치명적인 위력을 발휘한 것은 독재와 내전, 분쟁과 범죄에서였고, 군인보다 더 많은 민간인의 목숨을 앗아갔다. 이 비극은 주로 아프라카와 중남미 같은 제3세계 국가에서 벌어졌으며, 남녀노소 가릴 것이 없었다. 외신에는 종종 소년병들이 AK를 들고 해맑게 웃는 모습이 소개되곤 했다.

다이아몬드와 같은 천연자원을 둘러싼 아프리카의 내전에서도 AK는 맹위를 떨쳤다. 그리고 이전의 삶을 완전히 뒤바꿔놓기도 했다.

아프리카에서 AK는 목축 집단 사이에서 일반적인 소 물물교환 기준이 되기도 했다. 1998년, AK 한 자루는 소 서너 마리의 가치가 있었는데 정부에 등록된 총이면 더 가치가 나갔다. 소를 도둑질해 소 떼를 늘리는 용도로도 총을 사용할 수 있었다. AK가 등장하기 전만 해도 소 도둑질이 대규모로 이루어지지는 않았다.

대륙간 탄도미사일을 공중에서 격추하는 기술을 보유한 미국도 소말리아에서 겪은 ‘블랙 호크 격추’ 사건 이후로는 AK가 두려워 지상군 파견을 꺼리게 됐다. 미국은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 승리를 거두었다고 자랑하지만, 아직도 두 나라는 AK로 상징되는 사회불안에 시달린다. 냉전이 남긴 가장 치명적인 유산은 지금도 세계를 배회하면서 분쟁이 벌어지거나 치안이 약화되는 곳마다 역병처럼 퍼져 나가고 있는 것이다.

2004년 플레이보이지(誌)는 '세계사를 바꾼 50까지 제품' 특집 기사에서 AK47을 4위로 꼽았다. 애플 매킨토시 컴퓨터가 1위, 경구 피임약이 2위, 소니의 VCR이 3위였다. 이 기사의 부제목은 ‘지난 반세기에 등장한 가장 혁신적인 소비재를 말한다’였다. 이 총이 ‘소비재’로서 현대 세계에 얼마나 중대한 영향을 미쳤는지 상징적으로 보여준 기사였다.

책은 베트남전쟁부터 이라크전쟁까지, 아메리카에서 아프리카에 이르기까지 이 소총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 말 그대로 세계사를 바꿔 놓은 무기의 일생을 다루고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