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맞는 집'에 주목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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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맞는 집'에 주목하는 이유
  • 한주연 기자
  • 승인 2019.05.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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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은 그저 먹고 자는 곳이 아니라 내 생활이 머무르는 작고 소중한 삶의 행복이 함께하는 곳이라고 할 수 있다. 수많은 시행착오와 생각의 결과물인 셈이다.

공간이란 삶으로부터 만들어진다. 내가 무엇을 소중히 여기며 사는지 생활의 우선순위를 살피고, 그것이 자연스럽게 공간에 반영될 때 우리는 편안함을 느낀다. 유행에 따라 무작정 버리고 비운다거나 그저 좋아 보이게 꾸민다고 해서 그곳이 반드시 내게 맞는 공간이라 할 수 없는 것이다.

때문에 공간에 대한 평가는 객관적이기 어렵다. 모든 것을 비웠다고 해도 어딘지 모르게 불편할 수 있으며, 다소 어수선해 보일지 몰라도 따뜻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매일매일 먹고 자고 편안한 휴식을 취하는 집은 어떠한가.

집은 단순히 물리적인 공간이 아니다. 집에서 생활하는 사람과 공간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곳이며, 여기서 일상의 소소한 행복이 끊임없이 펼쳐진다. 나아가 집은 그 안에 살고 있는 이의 삶을 바꾸기도 한다. 결국 집의 모양이 생활의 모양을 결정짓는다.

집은 그저 먹고 자는 곳이 아니라 내 생활이 머무르는 작고 소중한 삶의 행복이 함께하는 곳이라고 할 수 있다. 수많은 시행착오와 생각의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현대 사회에서 집은 여러 가치들이 공존하고 때로는 상충하는 장이다. 집은 우리가 밥을 먹고 잠을 자고 가족과 시간을 보내는 생활공간인 동시에, 부동산이라는 이름으로 전 세계의 경제를 쥐고 흔드는 상품이기도 하다. 2008년 세계 경제위기의 중심에도 집이 있었으며, 한국에서도 부동산 시장을 어떻게 규제하느냐는 늘 정책의 핵심 문제였다.

집이 상품이 되고 우리 삶과 점점 더 멀어지게 된 상황을 우려하면서, 또 부동산 시장이 둔화하면서, ‘살아가는 곳’이라는 집의 본질적 역할에 주목하는 흐름도 등장하고 있다.

이런 흐름 위에서 ‘집의 본질’이 무엇인지 밝히려는 시도가 많이 있었다. 그간 주거 문제를 다룬 책들은 대부분 건축가의 입장에서, 사회학의 관점에서 집과 인간의 관계를 고찰한 결과물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신경인류학자 존 S. 앨런의 저서 <집은 어떻게 우리를 인간으로 만들었나>는 앞서 이뤄진 이같은 논의들에 더해 과학의 눈을 도입해 집의 본질을 추적한다.

앨런은 빠르게 발전하고 있는 신경과학과 고인류학 연구의 결과물들을 토대로 집의 진화적 뿌리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인간은 어떻게 집에서 살도록 진화했으며 인간이 집에서 느끼는 편안함의 정체는 무엇인지 밝혀 ‘인간 종’이라는 아주 근본적인 차원에서 집의 중요성을 알려준다.

앨런은 인간 뇌와 인간 행동의 진화에 관심을 두고 연구해온 신경인류학자다. 안토니오 다마지오를 비롯한 여러 저명한 과학자들과 활발히 교류해온 그는 인간 신체에 대한 자연과학적 탐구와 인간 사회에 대한 인문학적 지식을 종합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앨런은 먼저 ‘우리는 왜 집에서 편안함을 느낄까?’라는 질문에 답하기 위해 ‘집의 느낌’을 탐구한다. 느낌과 정서라는 주관적이고 모호한 대상을 선명하게 이해하도록 도와주는 것은 과학이라는 틀이다.

앨런은 인간의 진화를 보여주는 고인류학의 중요한 발견들을 따라가는 동시에 신경과학과 뇌과학에서 이뤄진 최신의 연구 결과를 결합해 집과 인간이 맺어온 감각적이고 정서적인 관계를 밝힌다. 과학적 접근을 따라가다 보면 뇌의 신경전달물질 수준까지 내려가 집에 대한 우리의 근원적인 욕구를 속속들이 이해하게 된다.

집에서 벌어지는 주요한 활동, 즉 수면과 휴식은 우리의 몸과 마음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앨런은 잠을 잘 때 신체에서 일어나는 항상성 유지 활동을 통해 집에서 취하는 숙면이 바깥세상의 스트레스로부터 우리를 어떻게 회복시키는지 보여준다. 아울러 명상을 하는 뇌를 찍은 신경촬영법 연구를 예로 들어 긴장이 완화된 상태에서 뇌가 더욱 자유로워진다는 점을 알려준다.

이런 생리적인 활동뿐 아니라, ‘공감’처럼 집과 관련해 더욱 사회적인 영역에 있는 활동의 생물학적 근거도 만나게 된다. 앨런은 보수 정치인인 딕 체니와 롭 포트먼이 동성애자 자녀들의 영향으로 동성 결혼을 지지하는 입장을 갖게 된 ‘롭 포트먼 효과’를 언급한다. 고통받는 사람들의 사진을 볼 때 뇌의 어떤 영역이 활성화되는가를 살핀 신경촬영법 연구를 살펴보면서 집을 공유하는 집단, 즉 가족 사이에서 생겨나는 공감의 정체를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앨런은 집에 대한 이런 욕구가 어떻게 진화해왔는지를 살핀다. 인간은 어떻게 지금 같은 형태의 집에서 살도록 진화했는지, 집은 우리가 현생 인류로 진화하는 데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밝히기 위해 선사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는 가장 초기의 호미닌에서부터 인류 진화의 변천 과정을 따라가면서, 그 여정에서 발견되는 집의 선조들을 찾아낸다. 음식을 가공하고 도구를 만드는 장소였던 본거지, 공동생활의 중심이 돼준 ‘불’을 사용한 흔적, 지금과는 아주 다른 형태로 협력적 양육을 했던 가족의 흔적들이 그것이다.

더불어 사람이 가질 수 있는 가장 영구적인 집인 ‘묘지’로부터 인간이 집과 맺는 상징적이고 정서적인 관계를 읽어낸다. 네안데르탈인이 정말로 친지를 매장했는지, 묘지를 만들 능력이 있었는지를 따져보면서, 진화 과정의 어느 단계에서 상징을 다루는 ‘인간다움’이 형성되었는지를 밝힌다.

앨런은 마치 탐정처럼 수만 년 전까지, 유전자 하나하나까지 파고들어가서 집의 기원을 추적한다. 이 이야기에서 우리는 우리의 가장 사적이고 내밀한 공간인 집, 그리고 집에 있는 우리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앨런은 집에 대한 진화적이고 인지적인 이해가, 현대 사회가 당면한 주거 문제에도 통찰을 제공할 수 있다고 말한다. 부동산 버블과 공공주택이라는 커다란 두 이슈를 중심으로, ‘집 느낌’의 이해가 어떻게 더 나은 집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실마리를 주는지 논의한다.

앨런은 현대 사회의 주거 이슈를 이해하기 위해 경제학, 심리학, 신경과학을 종합적으로 아우른다. 먼저 경제학자 로버트 실러와 조지 애컬로프가 논한 ‘야성적 충동’ 개념, 뇌의 의사결정 시스템에 대한 신경경제학 연구를 통해 ‘호모 에코노미쿠스’의 합리적 판단이 실제로는 잘 작동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여기에 문화적 요인이 가세한다. ‘집 소유권은 좋은 것이다’라는 일종의 이념이 어떻게 형성됐는지, 이것이 버블 당시 어떻게 투자 위험을 과소평가하게 만들어서 많은 이들을 약탈적 금융상품의 희생양이 되게 했는지 살핀다. 

이와 함께 앨런은 인간에게 직접 경험과 가까운 친척들의 경험에 기초해 세계를 이해해왔던 인지적 진화 과정의 영향이 남아 있다고 말한다. 그래서 아직도 우리에게 가장 큰 힘을 발휘하는 정보는 ‘이야기’다. 이야기는 부동산 시장에서 자신감을 증폭시키는 기제가 된다.

이야기는 인간이 집과 맺는 정서적 관계에 형태를 부여하기도 한다. 앨런은 공공주택 정책이 실패해 슬럼화된 미국의 사례와 뉴질랜드의 성공적인 국가 주택을 대비하면서 집을 둘러싼 개인의 이야기들은 정부 정책에 어떻게 영향을 받는지를 지적한다.

주목할 점은 현대 사회에서 인간과 집의 관계는 점점 더 멀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집보다 일터에서 더 오랜 시간을 보내는 날이 많고, 전통적인 가족 형태는 점점 해체되고 있다. 앨런은 그럼에도 집이 우리에게 주는 본질적인 이익은 아직 유효하다고 말하며, 변화하는 세상에서도 집과 관련된 즐거움들을 인식하고 누릴 수 있기를 당부한다.

앨런은 나아가 집에 대해서 생각할 때, ‘아파트’라는 구조나 ‘부동산’이라는 관념을 먼저 떠올리는 사회에서 어떤 관점으로 집을 바라볼 것인지 그 방향성을 제시한다. 특히 자신의 공간을 보살피면서 살아가는 행복이 무엇인지, 자신의 생활에 맞는 좋은 집이란 무엇인지 질문하며 저마다의 집의 모양을 그릴 수 있도록 도와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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