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의 페미노트] '숨겨진' 사람들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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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의 페미노트] '숨겨진' 사람들의 이야기
  • 홍성민(출판기획자·칼럼니스트)
  • 승인 2019.03.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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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투'(#MeToo·나도 피해자다)로 촉발된 페미니즘 열풍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페미니즘을 둘러싼 논쟁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지만, 페미니즘의 정확한 의미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페미니즘은 '여성의 특질을 갖추고 있는 것'이라는 뜻을 지닌 라틴어 '페미나(femina)'에서 파생한 말이다. 성 차별적이고 남성 중심적인 시각 때문에 여성이 억압받는 현실에 저항하는 여성해방 이데올로기를 의미한다. 알들 모를듯 세계적인 이슈로 부상한 페미니즘은 무엇일까. 분명한 것은 페미니즘은 하나의 총체적인 사상의 형식과 체계로 묶을 수 있을 만큼 구체적인 실체를 지니고 있다는 사실이다. 페미니즘을 달고 어느 순간부터 책들이 쏟아지고 있는 지금, 지데일리는 페미니즘의 이해를 돕는 책을 소개한다.

“이 세상 모든 해방과 마찬가지로 에로티즘, 특히 표현의 자유는 고도의 투쟁으로 얻어집니다. 이는 스스로 생각할 권리라는 매우 드문 자유로부터 얻어지는 것이다. 모두에게 가장 엄숙한 금기에 맞서야 합니다.”

<섹스와 거짓말>은 공쿠르상을 수상한 프랑스 작가 레일라 슬리마니가 쓴 여성에 관한 가장 실제적이고 현재적인 인터뷰 에세이다.

여성의 성적 욕망을 적나라하게 다룬 뜨거운 데뷔작 <그녀, 아델>과 여성에게 강요되는 모성과 숨겨진 존재로서 여성을 조명한 작품 <달콤한 노래>는 프랑스 문단의 큰 찬사를 받았고, 슬리마니는 단 두 번째 작품으로 113년 공쿠르상 역사상 12번째 여성 작가로 이름을 올렸다.

그는 앞선 두 작품을 통해 세상을 향해 여성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행보를 보여주며 픽션과 논픽션 외 모든 방면으로 여성에 관한 글쓰기를 지속하고 있다.

2016년 독일 쾰른에서 무슬림 이민자들이 유럽 여성을 성폭행한 사건이 크게 보도된 이후, 모로코 출신인 레일라 슬리마니는 여성의 욕망이 가장 금기로 여겨지는 자신의 고향에 가서 그들의 목소리를 직접 듣기로 했다. 

모로코뿐 아니라 알제리와 튀니지 등에서 살고 있는 여러 방면의 사람들(독립 라디오 진행자, 저널리스트, 경찰, 교수, 영화 감독, 매춘부, 의사, 페미니스트, 자신의 독자 등)을 인터뷰했다.

‘욕망을 품을 권리’조차 가져본 적 없는 여성들의 목소리를 생생하게 전달한 이 책은 슬리마니의 영원한 주제인 ‘여성’에 대해 소설과는 또 다른 방식으로 접근하여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직접 만난 여성들의 아주 내밀한 이야기를 소개하면서, 비단 무슬림 사회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걸쳐 있는 여성 문제에 관한 모순과 부조리를 고발하고 나아갈 방향에 대한 견해를 밝힌다. 

슬리마니는 성의 문제를 단순히 종교적이나 도덕적인 문제가 아닌 정치적이고 경제적이며 사회적인 문제라고 강조한다. 모로코에서는 동성애, 매춘, 혼외 정사가 법으로 금지돼 있지만 실제로는 드물지 않게 일어난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을 뿐이다.

다른 이슬람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모로코는 애써 이런 현실을 무시할 뿐만 아니라 여성과 사회적 약자에게만 더욱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며 심각한 실상을 덮으려고만 한다. 

모로코 사회에서 재력이 있고 성 문제에 대해 제한을 받지 않는 남성들은 마음껏 성을 이용하고 착취한다. 이와 달리 어느 곳에서든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사람들, 가난한 여성들은 위험한 상황에 노출될 뿐만 아니라 성적으로 착취당하고 있다.

이런 상황은 성이 단지 종교적, 도덕적 문제가 아니라 정치적이고 경제적이고 사회적인 문제라는 주장을 여실히 드러낸다. 

특히 여성, 성 소수자, 빈곤층은 이 문제를 평생 경험하며 살아간다. 성은 개인적이고 윤리적인 차원의 문제를 넘어서는 그 무엇보다 정치적인 문제이며, 이런 성에 관한 금기를 건드리는 일 자체가 여성을 해방하는 일이 될 수 있다.

슬리마니는 여성운동가 말렉 셰벨의 말을 인용하며 금기를 둘러싼 말의 자유를 얻는 것이야 말로 여성이, 사회적 약자가 권리를 얻는 방법이라고 주장한다. 아울러 표현의 자유는 고도의 투쟁으로 얻어진다고 강조한다..

금기에 갇힌 모로코든, 그보다 좀 더 자유로운 한국이든, 여성은 세계 어디에서나 '욕망할 권리'를 충분히 누리지 못하고 있다. 다만 이 책이 말하고 있는 것처럼 여성의 성적 권리는 곧 여성의 인권과 직결된다.

성적 자유는 인간의 기본권이며, 성적 권리를 실행하고 자기 몸을 있는 그대로 표출해도 어떤 위험 없이 모든 성적 강제나 성적 폭력으로부터 자유로운 채로 성생활을 누리는 것. 이는 전 세계의 모든 여성들에게 보장돼야 할 근본적인 요구이자 권리다.

여성의 욕망과 남성의 욕망을 같은 선상에 놓는 어쩌면 너무나 자연스러운 상태를 위해 각자의 자리에서 힘겨운 싸움을 해나가야 하는 여성들이 이곳에도, 저곳에도 있다.

현재 한국 사회 역시 레일라 슬리마니가 지적하고 있는 이 문제점은 동일하게 적용된다. 한국 사회 역시 남성이 중심이 된 가부장제가 뿌리 깊이 존재한다. 여성의 성적 대상화가 빈번하게 이뤄지며 여성의 성적 권리는 존중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섹스와 거짓말」 레일라 슬리마니(아르테)
「섹스와 거짓말」 레일라 슬리마니(아르테)

여성의 욕망할 권리를 여성의 인권과 분리해 생각할 수 없다는 점을 고려하면, 우리와 이슬람 사회의 상황은 본질적인 맥락에서 크게 다르지 않다. 오히려 억압된 환경에도 불구하고 생생하게 자신의 욕망과 주체와 권리에 대해 발언하고 있는 그녀들의 목소리를 통해 형식적 자유에 은폐된 우리 사회의 담론이 놓치고 있는 지점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모로코에서 살아가고 있는 여성들은 철저히 남성 사고 중심적인 단단한 금기 속에 갇혀 있다. 그들 사회의 가장 큰 문제는 그 사회 속에서 고통받고 소외당하고 있는 사람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들어야 알 수 있다.

모로코의 절망적인 현실 속에서 슬리마니가 그녀들을 직접 만나 그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인터뷰 형식으로 담은 것엔 큰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어떤 자료들보다도 그들의 이야기가 귀중한 이유는 그녀들이 직접 생활 속에서 겪은 생생한 사례를 통해 자신이 욕망이 주체임을 스스로의 목소리로 외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이 이야기는 작가를 통해 모로코 여성뿐 아니라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여성의 삶에 대한 이야기로 확장된다. 그녀는 여성의 연대에 대해 말하며 그들의 목소리를 세상에 그대로 내보내고자 했던 이유를 밝힌다. 슬리마니는 직접 그녀들과 마주 앉아 그들의 육성을 들었고, 그들의 실상을 받아 적었고, 마침내 세상에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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