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경임의 착한경제]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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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경임의 착한경제]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10년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보자. 2006년 호황을 누려오던 미 주택시장이 조정 국면으로 들어섰다. 동시에 신용 등급이 낮은 저소득층에 고금리로 주택 마련 자금을 빌려주던 서브프라임 모기지, 이른바 비우량주택담보대출에 문제가 발생했다. 가격이 계속 상승하던 시기에는 별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주택시장이 위축되자 채무자들의 연체율이 급증, 2006년 말에는 14%에 이르렀고, 2007년 초에는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까지 불거졌다. 이로 인해 서브프라임 모기지 업체뿐 아니라 관련 파생상품을 판매하거나 이에 투자했던 투자금융 회사들도 큰 손실을 입었다.

당시 이는 바다 건너 먼 나라의 일일 뿐이었다. 하지만 부실 채권 문제와 유동성 위기가 맞물려 2008년 9월 15일 세계 5대 투자은행 중 하나인 리먼브라더스가 파산 보호를 신청하면서 상황은 급변했다. 월가는 공포에 휩싸였다.

당시 FRB(연방준비제도 위원회)는 세계 최대 보험회사 AIG에 850억 달러 구제금융을 결정했다. 세계 3위의 투자은행인 메릴린치는 협상 개시 후 48시간도 안돼 상업은행인 BOA(뱅크 오브 아메리카)에 주당 29달러에 매각됐다. 당시 주가에서는 10달러 정도의 프리미엄이 붙은 가격이었지만, 1년 전 가격에 비해서는 2/3 수준이었다.

큰 충격에 빠진 세계 금융시장에서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었다.

2008년 1월 1800포인트대였던 코스피 지수는 같은 해 11월 900포인트 수준까지 떨어졌다. 900원대였던 원달러 환율은 1400원대까지 치솟았다. 환헤지 상품인 KIKO에 가입한 중소기업들은 급등한 환율 때문에 막대한 손실을 입었다.

반 토막 난 펀드 상품도 속출해 소액 투자한 개인에게까지 피해가 미쳤다. 세계 경제가 얼어붙은 가운데 환율과 함께 원자재 값까지 동반 상승해 서민들의 고통은 가중됐다.

그렇다면 2008년 미국발 세계 금융위기는 왜 발생한 것일까. 또 어떻게 이토록 멀리 빠르게 전파돼 세계 곳곳에 깊고 큰 상처를 남길 수 있었을까.

당시 자유 시장경제의 논리를 신앙처럼 믿는 이들은 미 금융위기의 원인을 단순한 경제 정책의 실패에서 기인한 것일 뿐 자유 시장경제의 내부 모순에 의한 것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미 금융위기가 터지자마자 경제 분석가들은 그 제1원인으로 파생상품에 대한 미 금융당국의 관리·감독 소홀을 문제 삼았다. 사실 그간 미 금융당국은 파생상품을 ‘사적 거래’라는 이유로 규제의 대상에서 제외시켜왔다. 이러한 무규제가 파생상품의 부실과 리스크를 키워왔고, 결국 금융위기의 뇌관으로 작동한 것이다.

이는 자유 시장경제주의자들의 말처럼 얼핏 단순한 경제 정책의 실패로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금융시장에 대한 무규제 역시 본질적으로 자유주의 시장경제의 파생상품일 뿐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과 경기 부양 정책으로 구가하던 미 경제의 황금기가 막을 내리고 1970년대 세계 경제는 장기적인 불황의 시대로 접어들었다. 이에 따라 1929년 대공황 이후 세계 경제를 이끌던 케이스경제학이 퇴장하고, 시카고학파로 대표되는 신자유주의자들이 전면에 등장했다. 

스태그플레이션과 복지병을 해결한다는 명분 아래 등장한 신자유주의 경제학은 1980년대 레이거노믹스와 대처리즘의 근간이 됐고, ‘세계화·자유화’라는 용어를 유행시키기에 이르렀다.

신자유주의는 민간 부문에 대한 국가의 규제를 완화하고 경쟁을 활성화시켜 효율성을 높이면 궁극적으로 경제성장을 이룰 수 있다고 주장한다. 아울러 자유무역과 시장개방을 통해 국제적 분업을 이루어 자원 사용을 효율화하자고 말한다.

신자유주의는 경쟁을 촉매로 하는 시장의 조정 기능을 믿는 경제학이며, 탈규제와 탈경계의 신념이다. 이러한 신자유주의 경제학을 적극적으로 채택한 미국 등 선진국들의 비호 아래 세계화와 자유화는 가속화했고 마침내 1995년 WTO 체제가 출범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조류 속에서 금융시장 역시 세계화를 가속화해왔다. 결과적으로 지금은 천문학적인 국제 금융자본이 몇 번의 클릭만으로 이 나라에서 저 나라로 신속하게 움직일 수 있는 시대가 됐다. 세계 경제의 중심 미국에서 발생한 금융위기 역시 신속하게 세계 곳곳을 타격했다. 탈규제를 원인으로 한 금융위기가 탈경계를 통로로 해 번져나간 것이다.

사실 신자유주의 경제학은 발생 초기부터 선진국과 후진국 간의 갈등을 유발하고 빈부 격차를 심화시킨다는 등의 비판을 받아왔다. 그러나 신자유주의가 추구하는 효율성과 경쟁에 대한 마법과도 같은 믿음이 그러한 비판들을 효과적으로 무마시켰다.

경제적 자유주의는 스스로를 정당화하기 위해 두 가지 논거를 제시하고 있다. 하나는 자유 시장이 공공복리를 달성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시장경제하에서 경쟁은 불가피한 물적 강제라는 주장이다.

모든 것을 최적의 상태로 만들 수 있다는 자유로운 시장에 대한 믿음도 이성적인 것일 수 없다. 오히려 이런 것들은 현대 사회에서 탈마법화되어야 할 오래된 시장형이상학에 불과하다.

결국 경제적 합리성은 생태적 효율성을 고려하지 못하고 있다. 이처럼 경제적 합리성만을 강조할 경우 어디에선가 이성은 정지되고 만다.

사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단순한 경제의 양적 성장만은 아니다. 발전된 경제 상황 속에서 인간이 얼마나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을 것일까, 경제가 인간이 자신의 삶의 계획하고 풍요로운 인생을 살아가는 데 어떻게 기여할 수 있을 것일까 등과 같은 질문 속에서 인간의 삶이 유익한 방향으로 나아가는 데 도움이 되는 경제적 진보를 원하는 것이다.

그러나 경쟁과 이에 근거한 효율성이 지나치게 강조되면서 경제에 대한 윤리적인 성찰이 설 자리가 없어졌다. 그 결과는 지금 우리가 목도하는 바와 같이 실업, 비정규직 증가, 소득 격차 등으로 나타나고 있다.

또한 인간의 노동은 인간 삶의 한 방편이며, 이를 통해 인간은 자아를 완성해나갈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효율성 강조는 인간의 노동을 단순히 이윤 획득을 위해 투입되는 재화 정도로 취급되도록 만들었다.

금융위기 이후 미 재무장관 티모시 가이트너는 “기업이 더 느슨한 규제 기관을 찾아다니는 환경을 없애는 것이 시장 개혁의 핵심 목표”라고 말한 바 있다.

2001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조지프 스티글리츠는 “시장은 그 자체로 효율적이지 않다. 이는 경제 주체들이 합리적으로 행동한다는 가정이 틀렸기 때문”이라며 “보이지 않는 손은 보이지 않는 것이 아니라 없는 것일 수 있다”고 말했다.

물론 시장경제 자체를 반대할 수는 없다. 다만 인간적 측면을 고려하지 않는 야만한 시장경제를 내적으로 개혁해 문명화해야 한다. 경제윤리가 기능할 수 있다. 시장경제 안에서 시민과 기업, 국가가 각자의 윤리적 책임을 다해야 한다.

자유 시장의 신화는 흔들리고 있다. 시장의 자체 조정 기능 역시 의심받고 있다. 2008년의 금융위기로 신자유주의는 스스로 한계를 드러냈다. 세계는 여전히 그 공포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전부터 신자유주의 경제체제에 대한 성찰은 진행 중이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경제 정책은 이러한 시대적 흐름과는 반대로 여전히 규제 완화, 친기업, 친시장의 성장 제일주의로만 내달린다. 인간다운 삶의 가치문제는 여전히 고려 대상이 아닌 것처럼 비춰진다. 보다 바람직한 시장경제를 위해 경제의 인간적·윤리적 측면을 되새겨봐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