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학자의 도시읽기] 마을 속 숨은 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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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학자의 도시읽기] 마을 속 숨은 가치
  • 김성화(지리학자·시민기자)
  • 승인 2019.03.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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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은 사람들이 특정한 자연환경을 선택해 주거지를 조성하고 그 안에 인공환경을 구축한 결과물로, 그 안에는 사람들의 문화가 고스란히 반영돼 있다. 사람의 집단, 문화, 물리적 환경은 서로 밀접히 관련돼 있어 이들 중 하나만 떼어내어 본다면 마을을 온전히 이해하기 힘들다.

특히 전근대시기 조성돼 지금까지 사람들이 살고 있는 역사마을을 일컫는 ‘전통마을’은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살아온 선조들의 오래된 지혜의 공간이다.

그중에서도 하회와 양동마을은 지난 2010년 8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기도 했다. 500~6006 년의 역사를 지닌 대한민국의 전통마을이 이 시대에 세계인의 주목을 받고 그 가치를 인정받은 것이다. 그렇다면 시대를 초월해 빛을 발하는 우리의 전통마을의 가치는 진정 무엇일까.

<한국의 전통마을을 찾아서>는 우리 전통마을의 가치를 탐구한 건축 순례기다. 1985년 대학원생 시절부터 26년간 전통마을을 찾아다니며 연구해온 건축학자 한필원은 이 책에서 기존 서구 건축이론의 잣대에서 벗어나 한국의 전통마을에 내포된 철학과 원리들을 찾는 작업을 통해 건축의 패러다임을 바꾸어놓은 보편적 이론으로서의 전통마을론을 펼친다.

전통마을의 물리적 현상들을 개별적으로 바라보기보다 유기적으로 연결해 파악하면, 전통마을은 물리적 공간과 정신적 내용이 결합된 의미 있는 하나의 체계로 다가온다. 사상ㆍ문화ㆍ사회ㆍ환경 등 네 가지 시선으로 그 의미 체계를 해석하면, 우리는 놀랍게도 전통마을에 이 시대가 가장 필요로 하는 가치들이 숨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전통마을에는 공동체의 소통과 결속을 뒷받침하며, 소수의 사람들이 최상을 차지하기보다 모두가 최적을 누릴 수 있는 해법이 담겨 있다. 그리고 인간이 자연과 하나되어 건강하게 공존하는 다양한 논리들이 숨어 있다. 독자들이 이 책에 소개한 열두 마을을 하나씩 찾아서 이 글을 바탕으로 마을공간을 읽어나간다면, 바람직한 주거공간에 담긴 소중한 가치들을 발견할 수 있으리라.

옻골마을, 한개마을, 낙안읍성에선 선조들의 사상이 어떻게 마을의 공간과 장소로 구체화됐는지를 살펴보며, 구조마다에 위계성과 확장성이라는 질서가 부여돼 있음을 들려준다.

다양한 문화가 숨 쉬는 성읍마을, 하회마을, 강골마을에서는 ‘우리의 문화는 어디나 다 비슷하다’는 고정관념을 깨며, 양동마을을 비롯해 도래마을, 닭실마을와 같은 대표적인 씨족마을에서는 마을 공간 곳곳에서 성리학자의 전형적인 삶의 방식을 읽을 수 있으며, 원터마을, 외암마을, 왕곡마을에서는 자연과 조화를 이뤄온 선조들의 지속 가능한 삶을 확인할 수 있다.

전통마을의 공간은 공동체의 소통과 결속을 뒷받침하며, 소수의 사람들이 최상을 차지하기보다 모두가 최적의 생활을 누릴 수 있는 해법을 담고 있다. 이 책은 우리 전통마을에서 땅과 건축과 인간의 진정한 관계를 재발견하고 있다. 더불어 현재와 미래의 주거공간에 대한 탁월한 지침을 들려준다.

지은이는 이 책에서 마을이 만들어질 당시 거주자들의 정신, 곧 사상이 어떻게 마을공간에 구현됐는지를 관심 있게 살피고 있다. 특히 사상 자체보다 사상이 낳은 ‘위계성’과 ‘확장성’, ‘다양성’이라는 세 개념이 마을공간에 어떻게 구체화됐는지를 살피고 있다.

우선, ‘질서 있는 사회’를 추구한 성리학은 마을공간에 ‘위계’를 부여했는데, 그 대표적인 것이 위계가 높은 것일수록 마을 공간 뒤에 위치한다는 ‘전후(前後) 개념’이다. 이는 ‘중심과 주변’으로 세계를 파악하는 기독교사상의 서구 건축이론과 다른 점이다.

또한 풍수와 성리학적 자연관은 마을을 구성하는 ‘확정성’의 개념을 낳았다. 선조들은 마을을 독립되고 자족적인 공간으로 보지 않고 주변 지역과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것으로 봤다. 마을이 넒은 주변 지역을 경영하는 ‘베이스캠프’가 되기고 하고(옻골마을), 마주 보는 산의 기운에 대응하는 조각을 조성해 주변 자연을 주거공간으로 흡수하기도 했다(낙안읍성).

관찰자인 남보다 ‘나’를 중심에 놓기에 건물을 배치할 때 건물이 바깥에서 어떻게 보일까보다 건물 안에서 무엇이 내다보이는지를 중요시했다. 이러한 확장의 시각은 주체성과 연결된다. 지은이는 이 때문에 전통마을에 가면 바깥에서 건축물 구경에 머물지 말고 건물 안에서 바깥 풍경을 바라보라고 권한다.

이와 함게 ‘다양성’을 들 수 있다. 전통마을의 밑바탕을 이루는 사상은 같으나 그 구현 방식은 현실 조건에 맞춰 매우 다양하다. 선조들은 <경국대전>, <택리지>, <임원경제지>, <주자가례> 등과 같은 교범의 개념에 충실하면서도 현실에 맞게 다양하게 변주해왔다. 이 덕분에 전통마을 답사는 늘 새롭게 다가온다.

이 책에서는 성읍, 하회, 강골마을을 통해 전통마을의 다양한 측면을 드러내고 있다. 토속적인 공간 속에 부모와 자녀 세대의 평등한 삶을 구현하고 있는 성읍마을, 양반과 평민 계층이 서로 용인하고 지지하면서 공존해온 하회마을, 전통마을이 근대기에 변모해간 양상을 다양한 한옥의 출현으로 살펴본 강골마을을 통해 문화의 다양함을 만날 수 있다.

특히 신당(神堂)이라는 점에서는 동일하지만 다른 공간 구성을 나타내고 있는 성읍의 안할망당과 하회의 삼신당을 비교해본다면, 전통마을은 어디나 다 비슷하다는 기존 관념이 얼마나 잘못된 통념인지 알 수 있다.

‘자연과 조화로운 삶’으로서의 우리 전통마을은 환경친화적 거주지이기도 하다. 여기서 ‘환경친화적 거주지’란 거주지의 건설과 유지와 관리가 주변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는 ‘자연조건에 대한 적응 능력’을 비롯해, 자원의 소모를 최소화하고 자체 순환기능을 통해 일정한 재생능력을 갖춘 ‘자원의 순환’ 요건, 그리고 여름에는 에어컨 없이도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한 것처럼 전통적인 ‘에너지 절감 시스템’ 요건을 갖춘 곳을 말한다.

전국의 대표적인 전통마을 12곳을 찾아 ‘사상, 문화, 사회, 환경’이라는 포괄적이고 보편적인 네 개의 시선으로 우리 전통마을에 숨어 있는 논리와 질서, 그리고 시대를 초월하는 가치를 밝힌 이 책은 거대한 집합적 공간인 마을의 공간 배치를 넓은 안목으로 바라봄으로써, 전통마을에 담긴 선조들의 오래된 건축학적 지혜를 새롭게 조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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