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현의 시시비비] 지금도 한 걸음을 내딛고 있을 그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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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현의 시시비비] 지금도 한 걸음을 내딛고 있을 그들에게

여객선의 침몰은 어느 나라에서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지만
세월호 침몰은 모든 면에서 지극히 한국적이라 할 수 있겠다.
세월호를 둘러싼 많은 문제들이 대부분 우리가 이미 알고있던
것들, 최소한 막연하게나마 느끼고 있던 것들이기 때문이다.?

다음달 16일은 세월호 참사가 있은 지 5년이 되는 날이다. 지난 3월 18일엔 세월호 투쟁의 상징이었던 광화문 세월호 분향소와 천막이 걷혔다.

팽목항에서 세월호가 침몰하던 순간부터 수년간 이어졌던 유가족의 단식, 삭발, 도보행진, 집회, 탄핵을 촉구하는 촛불광장과 박근혜 대통령의 파면 결정, 세월호가 수면 위로 올라오기까지 지난 5년은 격변의 시간이었다. 아울러 사건 해결의 진전이 이뤄지는 것처럼 보이는 시간이기도 했다. 

유가족이 겪은 지난 5년의 경험과 감정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을 것이다. 사회적 참사의 희생자이자 국가폭력의 희생자들이기 때문이다. 

이제 그만 잊으라고 말하는 이들 사이에서 세월호 참사란 과연 무엇이었는지, 그 사건은 과연 끝난 것인지,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는 그것으로부터 얼마나 안전한지, 우리는 과연 그들의 고통과 무관한지 같은 물음에 대해 다시 생각할 필요가 있겠다.

5년이란 시간이 흐르면서 유가족들은 저마다 달라진 삶의 지형에서 살아가고 있다. 고통의 시차도 제각각 다를 것이다. 유가족의 특징을 하나로 뭉뚱그리지 않고 그들의 차이를 더듬어 살피는 것, 그 일로부터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고 응답하는 사회가 가능해질 게다. 

유가족의 고통을 단순화하고 부각하는 행위는 그 고통을 소비하는 데 그칠 수밖에 없다. 특히 고통의 강도에 집중할수록 슬픔과 연민의 늪에 빠지고 ‘세월호 참사’라는 정치적 문제는 감정적이고 추상적인 문제가 될 것이다.

그러나 모든 정치적 문제는 구체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세월호 유가족과 생존자 가족이 처한 지형을 섬세하게 식별할 때 비로소 우리는 한국사회의 변화를 열어젖힐 토대를 얻을 수 있다.

5년 전 그날 수백 명의 목숨이 눈앞에서 사라지는 것을 목격하면서, 죽어가는 사람들 앞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해경을 목격하면서, 사람 목숨을 담보로 돈을 버는 업체를 방치하는 정부를 목격하면서, 죽음의 원인을 밝혀달라는 유가족을 외면하는 청와대와 국회를 목격하면서 우리의 머릿속에 하나의 질문이 떠올랐다. 과연 우리에게 국가란 무엇일까.

세월호 당시 자신의 생명을 보호해달라는 국민의 권리 요구는 철저히 묵살됐다. 자본에 봉사하는 하위 조직이 돼버린 국가는, 자본에 의해 국민의 천부적 자연권이 말살되는 것에 전혀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대한민국은 전근대적 국가도 아니었다. 전근대적 국가에서 국가는 부모와 다름없으며 국가는 부모가 아이를 보살피듯 국민을 보살펴야 하지만 세월호 이후 우리가 본 것은 국민을 '남의 자식'으로 대하는 국가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세월호 이후 우리는 '국가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답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현재 대한민국이 가지고 있는 결핍을 찾아내는 작업, 한국의 역사적 경험 안에 담긴 한국 정치의 특수성을 찾아내는 작업이 무엇보다 시급하다.

여객선의 침몰은 어느 나라에서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지만 세월호 침몰은 모든 면에서 지극히 한국적이라 할 수 있겠다. 세월호를 둘러싼 많은 문제들이 대부분 우리가 이미 알고 있던 것들, 최소한 막연하게나마 느끼고 있던 것들이기 때문이다. 

세월호 침몰의 원인을 밝히고 진상 규명을 해달라는 희생자 가족의 농성을 보면서 반국가적 행위를 읽어내는 범주 착오의 오류, 사회성과 반사회성, 안정성과 역동성의 균형이 사라진 한국 사회, 세월호를 한 걸음 떨어져서 바라보고 있는 중요한 관찰자들 등 우리 사회의 단면들이 다가온다.

무엇보다 세월호가 우리에게 던진 질문에 끈기 있게 대응하고 좀 더 긴 호흡으로 세월호 이후를 대비할 필요가 있다. 세월호 침몰 이후 지난 1년의 시간을 그 이후의 몇 년 몇십 년의 시간 속에 위치시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