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현의 시시비비] 우리의 역사는 광복되지 않았다(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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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현의 시시비비] 우리의 역사는 광복되지 않았다(上)

우리는 우리민족의 상고사와 고대사를 비롯한 전 역사가 한반도와 만주를 중심으로 이뤄졌다는 검증되지 않은 황당한 주장에 대해 아무런 의심없이 그대로 받아들여서는 안 될 것이다.

일제의 탄압에서 벗어나 대한민국이 건국된지 60년이 넘는 세월이 흘렀다. 그러나 아직도 우리민족의 역사는 광복되지 않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중국은 엄연한 대한민국의 영토인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를 대한민국에게 넘겨주지 않으려고 치밀한 계산을 바탕으로 역사를 왜곡 조작하고 있다. 일본 역시 제국주의의 망령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독도를 그들의 영토로 편입하기 위해 획책하고 있는 현실이다.

지금 우리 나라의 제도권 역사학자들은 우리민족 고유의 전통과 사유에서 벗어나 서양의 연구방식과 서양의 가치 척도로 한국사를 연구하고 있다. 더욱이 연구가 어려운 상고사나 고대사, 나아가 중세사에 대한 관심은 제쳐두고 비교적 연구가 수월한 근세사와 현대사에 몰려있는 실정이다. 위정자들도 별반 다르지 않은데 한국사를 학교교육에서 선택과목으로 다루도록 방치하고 있으며, 교과서 편찬에서도 많은 문제점을 드러낸다.

우리 조상들이 남긴 기록을 살펴보면 반도사관이 우리민족의 역사관으로 자리잡은 것은 세종 후기 이후였다. 반도사관은 세종 때의 집현전 학자들에 의해 정립됐고, 세조 때 강압적으로 강요된 후 성종 때에 이르러 자리잡게 된 것으로 보인다. 세종 초까지도 조선의 중심 강역이 대륙이었고, 세종 중기 때 조선의 중심 강역이 한반도로 이전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세종 때 훈민정음이 창제됐고, 농사에 필요한 서적과 의학서적이 편찬된 건 대륙과 반도의 차이를 극복하려는 노력의 일환이었다고 할 수 있다. 대륙과 반도의 언어의 차이, 자연환경과 기후, 농사방법의 차이에서 야기되는 불편을 최소화하려는 시도였다.

한반도의 구석구석을 살펴봐도 유난히 눈에 띄지 않는 게 고려시대의 유적과 유물이다. 고려의 도읍지였었다는 개성과 서울에서 고려의 유적임을 입증할 수 있는 역사 유적은 정말로 드물다고 할 수 있다. 특히 고려의 남경이었다는 서울에는 고려의 유적임을 보여주는 게 전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나라의 도읍지에는 당시 제왕과 친인척들이 살던 궁궐, 사당 그리고 귀족들이 살던 대규모 주거유적이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서울에서 고려의 유적을 발견하기란 정말로 어렵다. 이는 서울이 고려의 남경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반도사관으로 일관하고 있는 우리 나라 제도권 사학자들은 송악과 개경 그리고 송경을 구분하지 못하면서 세 곳이 모두 동일한 곳으로 경기도 개성시라고 인식하고 있다. 복주는 경상북도 안동이라고 보고 있고, 강도와 송도를 구분하지 못하면서 두 곳이 모두 인천시 강화군 강화읍으로 주장한다. 아울러 서울이 고려 때의 한양이라고 주장을 펼치고 있다.

고려의 도읍지들이 한반도에 있었다는 인식과 주장은 고려사를 제대로 읽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하며, 반도사관을 탈피할 수 있는 용기가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우리는 한반도의 개성과 강화와 안동, 그리고 서울에는 고려사에 기록된 고려의 궁궐이 전혀 없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단지 개성에 경덕궁이라는 단 한곳이 있을 뿐인데 실상은 고려 때 축조된 것이 아니라 조선 초 태종 때(1414년) 건설된 것으로 기록은 전하고 있다.

우리는 우리민족의 상고사와 고대사를 비롯한 전 역사가 한반도와 만주를 중심으로 이뤄졌다는 검증되지 않은 황당한 주장에 대해 아무런 의심없이 그대로 받아들여서는 안 될 것이다.

근세조선은 모든 역사의 강역을 한반도와 만주로 축소 이동시키면서 반도사관과 만주사관을 만들어냈다. 조선의 강역을 차지한 명도 새롭게 차지한 조선의 강역을 자신의 과거사의 강역으로 위장하면서 근세조선의 반도사관을 뒷받침해주고 있다.

허구의 사관인 반도사관과 만주사관이 만들어졌지만 어떠한 정사서에서도 반도사관이나 만주사관의 입지를 도와주는 기록은 찾을 수 없다. 일부 글자가 변조되거나 모순이 쉽게 드러날 가능성이 있는 부분이 삭제되고, 반도사관으로 해석되도록 일부 가필됐지만 지금 우리가 접할 수 있는 역사서를 살펴보면 반도사관과 만주사관의 허구와 억지는 드러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우리민족의 역사는 정사서를 통해 진실을 밝힐 수 있으며 그 진실이 밝혀져 일반인들이 납득할 수 있게 되면 우리 역사는 비로소 광복되는 것이다. 그 시기가 단축될 수 있도록 우리 모두 조선왕조실록, 고려사, 삼국사기를 정독할 필요가 있겠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