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목! 이사람] 박창진이 쏘아올린 '작은 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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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목! 이사람] 박창진이 쏘아올린 '작은 공'

땅콩회항부터 직원연대까지
을로서 존엄하고 당당하게 사는 법을 말하다

  • 한주연 gdaily4u@gmail.com
  • 등록 2019.0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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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창진 대한항공직원연대 지부장이 27일 서울 강서구 대한항공 본사에서 정기주주총회가 끝나고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대한항공 사내이사 연임이 부결과 관련해 열린 기자회견에 참석하고 있다. 뉴스1
박창진 대한항공직원연대 지부장이 27일 서울 강서구 대한항공 본사에서 정기주주총회가 끝나고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대한항공 사내이사 연임이 부결과 관련해 열린 기자회견에 참석하고 있다. 뉴스1

양심선언을 한 내부 고발자가 오히려 궁지에 몰리고, 피해자임에도 숨죽이고 살아야 하는 현실이 과연 올바른 것인가. 피해자인 자신에게 왜 가해자의 사과를 받지 않았는지 따지고,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는 이유로 돈에 눈이 먼 파렴치한 사람이라고 비난받아야 하는가.

2014년 12월, 한 사건이 한국 사회를 뒤흔들었다. 뉴욕 JFK공항에서 당시 조현아 대한항공 부사장이 이미 출입문을 닫고 출발한 비행기를 되돌려 한 승무원을 내리게 한 것이다.

사건의 발단이 마카다미아라는 견과류의 서비스 문제였기 때문에 사람들은 이를 두고 ‘땅콩회항’이라 불렀다. 이 사건은 고용자가 위계와 권력을 이용해 직원에게 불합리한 지시를 하고 폭력을 가한 것으로 대중의 분노를 자아냈다.

이로 인해 상대적으로 우위에 있는 자가 신분, 지위, 직급, 위치 등을 이용해 상대방에게 육체적·정신적·언어적 폭력을 가하는 행위를 뜻하는 이른바 ‘갑질’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촉발되었다.

그로부터 몇 년이 지난 2018년 4월, 대한항공 회장 일가의 폭언 녹음 파일과 동영상 등이 공개되면서 갑질 논란은 다시 불이 붙었다.

이에 대한항공 직원들이 더는 참을 수 없다며 익명채팅방을 통해 회사의 비리와 전횡에 대한 제보를 쏟아냈으며, 이는 그들이 직접 광장에 나와 갑질 근절 및 대한항공 경영 정상화를 요구하는 시위와 새로운 노조의 설립으로 연결되었다.

이 모든 일의 중심에 선 한 사람이 있다. 바로 박창진 사무장이다. 그는 한 개인이 타인의 폭력으로 어긋난 삶의 궤도를 스스로 바로잡아나갔다. 비록 타인이 자신의 삶을 망가뜨릴지라도 삶의 주인은 자기 자신이므로 이에 굴복하지 않고 당당하게 살아가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박 사무장은 이를 ‘회항’을 뜻하는 항공용어 ‘플라이 백(Fly Back)’에 빗대어 말한다. ‘플라이 백’은 본인이 겪은 땅콩회항 사건을 의미하는 동시에, 이에 굴하지 않고 헝클어진 삶을 바로세우고 자존감을 지키는 태도를 의미한다.

그의 그간 행보는 단편적으로만 알려진 땅콩회항 사건의 원인과 이면, 한국 사회가 안고 있는 여러 병폐를 돌아보게도 만들었다. 비정상적인 갑을 관계에서 오는 권력의 불균형 문제, ‘피해자다운 피해자’가 되기를 강요하는 사회 풍토, 노동자의 인권과 개인의 존엄까지 오늘날 한국 사회에 울림을 줬다.

박 사무장은 1996년 대한항공에 입사한 뒤로 VIP 담당 승무원직을 수행하고 회사 홍보 모델로도 활동하는 등 줄곧 능력을 인정받았다. 하지만 땅콩회항 사건 이후 회사에게서 버림받으면서 자신도 남들처럼 그저 언제든지 대체 가능한 부속품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한다.

그는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폭력에 의해 언제든지 인생의 항로가 바뀔 수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이제 절대로 타인이 자신의 삶을 함부로 하게 내버려두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땅콩회항 사건을 계기로 노동자이자 개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찾게 된 것이다.

타인의 폭력으로 일시적으로 삶이 궤도에서 이탈하더라도 그것을 바로잡는 건 타인이 아닌 자기 자신이어야 하며, 그럴 수만 있다면 나약한 을일지라도 얼마든지 주체적이고 당당한 삶을 살 수 있다는 주장이다.

혹자는 박 사무장에게 약자를 위한 보호막조차 없는 사회에서 왜 굳이 이 처절하고, 외롭고, 질 게 뻔한 싸움에 나섰냐고 물었다고 한다. 아무리 투사가 되어 사회를 변혁하자고 외친들 무엇이 바뀌고, 어떤 일을 할 수 있겠느냐고 말이다.

그런 질문을 받으면 박 사무장은 그들에게 말했다. “적어도 나라는 한 사람은 바뀌었다”고. 다른 사람들이 다시 그날 그 순간 뉴욕공항의 비행기로 돌아간다 해도 똑같이 행동할 것이냐는 질문에도 "나는 또 그럴 것"이라 답했다. 한 인간이 힘의 우위를 내세워 타인의 인권을 침해하거나 강탈해선 안 된다는 신념이 생겼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내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서라고, 이 가치를 지키기 위해 모든 것을 다할 것이라고.

침묵을 깨고 양심선언을 한 내부 고발자들이 마주해야 할 편견에도 주목해야 할 필요가 있다. 박 사무장은 단지 진실을 은폐하고 자신에게 누명을 씌우려는 회사에 대항해 모든 걸 사실대로 이야기했을 뿐인데도 유무형의 탄압과 각종 음해를 받았다. 그는 이것이 개인보다 조직을 우선시하고 조직 내부의 치부를 드러내는 행위를 죄악시하는 편견 어린 시선 때문이라고 말한다.

‘피해자다움’을 강요하는 사회 풍토에 대해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피해자가 자신이 당한 일을 외부에 알리는 것은 모든 것을 잃을 각오를 해야 하는 일이며, 피해 보상을 요구하는 것은 가해자에게 심적 부담감을 안겨주기 위한 최소한의 저항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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