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려라, 새로운 경제민주화
  • 해당된 기사를 공유합니다

열려라, 새로운 경제민주화

[질문하는 책] 공정한 경제 생태계 만들기
채이배 지음, 주운형 인터뷰, 헤이북스 펴냄

[지데일리] 한국 경제의 기적을 일궈낸 주역이자 온갖 적폐의 주범, 한국에서만 만날 수 있는 유일무이한 형태의 경제권력. 바로 재벌(재벌대기업)이다. 다른 나라에도 막강한 경제권력을 행사하는 대기업은 많지만, 한국의 재벌은 그 형성 과정부터 국가에게서 온갖 특혜와 지원을 받아 성장해왔던 게 사실이다.

 

채이배.jpg
ⓒ 채이배

 


재벌은 자신들이 누렸던 특혜가 어느새 자신들이 당연히 누릴 특권인 줄 아는 오만한 집단이 됐다. 특히 한국의 재벌은 유독 혈연 중심으로 경영권이 승계되고, 눈앞의 이익을 위해서는 소비자를 우롱하거나 법과 질서를 무시하는 것쯤은 아무렇지도 않게 여겨왔다. 


이에 대해 언론과 소비자, 지도관청에서 이의를 제기해도 문제를 해결하는 대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로비로 문제를 덮기에 급급했다. 이는 우리 사회 또 하나의 적폐인 '정경유착'이라는 사회적 부작용을 낳기도 했다.

 

재벌대기업의 성장은 국민의 희생과 도움 없인 불가능했다. 국내 기업의 가장 큰 소비자는 예나 지금이나 국민이며, 각 기업에서 회사의 이익을 위해 일하는 사람 역시 국민이다. 때문에 기업은 국내 소비자를 보호하고 합리적인 규칙을 바탕으로 공정한 경쟁을 해야 한다. 


그렇지만 자신의 특혜와 독점적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온갖 꼼수와 편법을 동원하며 그 피해를 고스란히 사회와 국민에게 전가한다. 이는 그대로 국민의 깊은 불신을 가져왔다.


해방 후와 전란의 틈바구니를 지나 3공화국 들어 본격적으로 성장하기 시작한 재벌대기업은 한국 경제 발전의 주역임에 틀림없다. 대기업 주도의 수출 주도 전략으로 한국 경제는 가파른 상승 곡선을 보여줬다. 


반면 재벌대기업은 수많은 경제적 성취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의 깊은 불신을 받고 있다. ‘재벌’이라는 용어에서 사람들이 연상하는 단어는 정경유착, 비자금, 로비, 탈세 등 하나같이 부정적인 것들이다. 하지만 이는 재벌대기업 스스로가 자초한 일이다. 

 

"자본주의에서 부가가치를 생산하는 기본단위로 가장 보편화된 기업 형태가 주식회사입니다. 회사는 더 많은 이익과 가치를 창출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기업지배구조는 이러한 기업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주주, 이사회, 경영진, 감사 등 기관 간의 권한과 책임의 관계를 말합니다. 회사의 주인은 누구일까요. 회사 설립에 돈을 투자한주주, 회사를 운영하는 경영진, 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 자금을 빌려준 은행, 물건과 서비스를 구매하는 소비자, 핵심 부품을 납품하는 하청기업, 기업이 존립하는 체제를 유지하는 사회까지 이 많은 이해관계자들 모두가 다 주인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겠지요. 하지만 회사라는 제도는 주주가 출자한 자본을 바탕으로 설립됩니다. 회사가 성장하고유지되는 동안 다른 이해관계자들에게 이익을 분배한 후최종 몫을 주주가 갖지요. 파산하는 경우에도 주주들이 최종적인 책임을 집니다. 회사의 주인은 법률적으로 회사의출생부터 사망까지를 책임지는 주주예요."

 

재벌대기업은 회사의 이익을 위해서 자신들을 키워준 국민의 신뢰를 저버렸다. 핏줄 중심의 경영권 승계를 위해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키면서 건전한 기업 경영을 방해한다. 그 과정에서 주주와 회사 임직원, 나아가 국민에게까지 불이익을 안긴다. 


아울러 시장에서 독점적 지위를 구축한 뒤 소비자에게 피해를 안기거나 이익만을 극대화하려 한다. 사회 거의 모든 분야에 사업 영역을 구축해 시장경제를 불안정하게 만들어 소비자인 국민의 피해를 유발한다.


이는 자신들을 키워준 국민에 대한 ‘배신’이다. 


이 책의 저자 채이배는 공인회계사가 된 후 장하성, 김상조 교수 등이 이끄는 참여연대 활동을 시작으로 경제개혁연구소, 경제개혁연대, 좋은기업지배구조연구소 등에서 경제 전문가로서 재벌개혁·소액주주운동 등 경제민주화 시민운동을 1998년부터 20여 년간 활동했다.


재벌대기업 위주의 기울어진 운동장이 균형을 잡을 수 있도록 대-중소기업 간 공정 경쟁 시스템을 세우는 일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그는, 기득권 중심의 정당이 아니라 견제와 균형을 만드는 제3지대 정당 정치를 추구하는 안철수 당대표의 제안을 받아들여 2016년 국민의당 비례대표 국회의원으로 국회에 들어갔다. 


저자는 임기 4년 동안 합리적인 법안과 정책을 통해 ‘공정한 경제 생태계 만들기’를 위한 의정활동에 전념했다. 국회 정무위원으로 있으면서 감사인의 독립성 확보와 회계 투명성을 높이는 <외부감사법>, 청년에게 공정한 출발의 기회를 보장하고 권리를 신장할 수 있는 <청년기본법> 등을 대표 발의해 통과시켰다. 


국회 법사위원으로 있으면서는 검·경 수사권 조정 등 ‘검찰개혁 법안’을 대표 발의하는 등 실제적인 검찰개혁을 이끌어냈다. 하지만 임기를 마치면서 제3지대 정당의 실패, 나쁜 경쟁만 남은 국회에 대한 책임감을 갖고 21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좋은 기업지배구조가 만들어진다면 권한과 책임이 균형 있게 잘 작동되고 내부의 경쟁 시스템이 실행되면 보다 경쟁력 있는 사람들이 일을 할 수 있는 구조가 된다는 뜻입니다. 경쟁력 있는 사람들이란 재벌 총수 같은 세습 받은사람들이 아니라 시장에서 능력을 검중받은 경영진들이지요. 기업의 최종 의사진정 수준이 높아지면 당연히 기업의위기 대응 능력은 높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쩌면 이 코로나19 위기로 기업의 위기 대응 능력이 팽가받게 된 거죠. 능력이 없는 기업은 결국 능력이 없는 경영지를 갖고 있다는 것이니, 경영진들이 시장에서 퇴출되는기회가 되기도 할 겁니다. 자발적으로 변화하지 못한 기업은 비자발적으로 전환할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최근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의 사과처럼 여전히 재벌들의 인식은 구태를 벗어나지 못했는데, 이전 두 번의 위기와는 다르게 코로나19발 위기는 실물 경제 전반에 걸쳐 일어나고 있다. 그는 한국 경제 위기의 유일한 해법으로 국가의 역할과 경제의 경쟁력을 새롭게 정의하면서 ‘새로운 경제민주화’를 제시한다. 더불어 21대 국회에게 경제개혁보다 선행돼야 과제로 ‘기울어진 권력구조의 균형 맞추기’라는 정치개혁을 주문한다.

 

20여 년을 경제민주화 시민운동을 했던 저자가 국회에 들어간 이유는 오직 하나였다. 재벌 대기업 위주의 기울어진 운동장이 균형을 잡을 수 있도록 대-중소기업 간 공정 경쟁 시스템을 세우기 위해서다. 


그는 ‘공정한 경제 생태계’를 만들기 위해 시민운동의 구호가 아닌 법률로써 그 토대를 공고히 다지고자 했다. 임기 4년 동안 ‘공정, 민생, 미래 사회’라는 입법 원칙을 세우고 합리적인 법안과 정책을 통해 의정활동에 전념했지만, 경제개혁은 아직 갈 길이 멀고 그보다 먼저 정치개혁을 해야 한다는 깨달음만 얻었다.


저자는 고군분투 끝에 경제개혁 법안을 통과시켜도 기득권 중심의 정치구조, 경제구조 안에서는 바람 앞의 등불이었다고 말한다. 재벌 대기업들의 횡포와 갑질은 반복되고 있지만 재벌개혁을 위한 <상법> 개정을 막는 등 보수야당은 재계 편만 들고, 대통령 공약마저 후순위로 밀어버린 집권 여당은 재계 눈치만 보며 뒷짐만 지고 있다는 비판이다. 


아울러 제왕적 권한을 가지는 현 청와대 시스템에서 문재인 정부의 경제개혁은 정책 방향의 첫 단추를 잘못 끼었다는 지적이다. 공정하지 못한 경제 생태계에서는 혁신도 이뤄지지 않고 성장한들 그 성과를 고르게 누리지 못하는데, 공정한 경제 생태계를 만드는 것보다 ‘소득 주도 성장’을 앞세웠다.

 

k262639850_1.jpg


"기업의 자유롭고 생산적인 경영 환동을 위해 규제를 완화하려면 진보 진영에서는 기업인 특히, 재벌 총수에게 특헤를 준다면서 규제 완화를 반대합니다. 한편 불법행위를저지른 경영진, 재벌 총수에게 엄한 처벌을 하는 경우 보수진영은 기업 때리기, 기업 옥죄기라며 처벌을 반대하죠. 진보·보수 모두 현행 주식회사제도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기업과 기업인을 동일시하기 때문에 생긴 오류입니다. 삼성과 이건희는 다른 존재예요. 이재용도 삼성이 아니죠. 이제는 진보· 보수를 떠나 합리적인 개혁의 시대를 맞이해야 합니다. 한국 경제의 양극화 문제를 해결하고 저성장 국면을 돌파하기 위해 이제 우리에게는 재벌개혁과 규제개혁이 모두 필요해요. 다만 순서와 속도는 다를 수 있습니다. 문재인 정권은 소득 주도 성장(최저임금 인상 등), 혁신 성장(규제개혁 등), 공정 경제(재벌개혁 등)를 나열하며 항상 동시에 추진하겠다고 해요. 여기서부터 첫 단추가 잘못끼였습니다. 공정하지 못한 경제 생태계에서는 혁신도 안이뤄지고, 성장한들 그 성과를 고르게 누리지 못해요. 따로 신속히 진행됐어야 합니다."

 

저자는 "코로나19 팬데믹이 공정한 사회를 회복시킬 수 있는 기회로 작용할 수 있다"면서 한국 경제 위기의 유일한 해법으로 ‘새로운 경제민주화’를 제시한다. 사회 안전망, 기본소득, 건전 재정이라는 새로운 국가의 역할을 주문하는 한편 기업구조조정과 자영업구조조정을 통해 새로운 경제의 경쟁력을 갖출 것을 제안했다. 


동시에 다양성을 존중할 수 있는 정치, 약자에게 힘을 실어줄 수 있는 정치, 견제와 균형을 이룰 수 있는 정치가 가능할 때에야 새로운 경제의 오래가는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다며 기득권 중심의 정치로는 공정한 경제, 공정한 사회를 만들어갈 수 없다고 말한다. 


이는 저자가 21대 국회에게 ‘기울어진 권력구조의 균형 맞추기’라는 정치개혁을 부탁한 이유다. 그는 ‘다당제와 공정 경제’는 우리가 가야 할 길이라고 강조한다.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