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하는 책] '독일 통일 30년' 드라마틱한 반전과 잘 협상하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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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하는 책] '독일 통일 30년' 드라마틱한 반전과 잘 협상하는 법

이은정 '베를린 베를린'(창비)

[지데일리] 2차 세계대전 이후 냉전체제의 최전선으로서 40년을 보낸 베를린. 당시 동독 영토 한가운데 떠 있는 섬과 같았던 서베를린은 동서독의 갈등 원인이기도 했지만, 양측 정부로 하여금 교류를 모색하게 만드는 이유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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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1월 9일은 베를린장벽이 붕괴된 지 30년이 되는 날이다. 베를린장벽 붕괴 11개월 뒤 독일은 전세계에 통일을 공식 선언했다. 통일 이후 독일은 유럽연합의 맹주이자 세계 4위 경제대국으로 발돋움했고, 통일독일의 수도가 된 베를린은 문화와 예술이 가장 자유롭게 펼쳐지는 도시로 자리잡았다. 


<베를린, 베를린>은 아픈 역사를 딛고 오늘날 세계적으로 각광받는 문화도시가 된 베를린의 변화를 추적하면서, 이러한 변화가 과거와 현재의 단절이 아니라 연속선상에 있음을 밝혀낸다. 지금의 베를린을 이해하기 위해 저자 이은정(베를린자유대학교 한국학과 교수)은 동독의 한가운데에 있는 베를린이 어째서 동독의 도시로 귀속되지 못하고 동서로 분단되었는지 그 과정을 이야기한다.


베를린의 분단이 기정사실화되기까지 찾아온 두차례의 위기 ‘베를린 봉쇄’(1948.6~1949.5)와 ‘베를린 최후통첩’(1959.1)은 미국과 소련, 두 냉전세력의 대결에서 비롯한 것이었다. 베를린 최후통첩 당시 베를린을 둘러싼 미국과 소련의 힘겨루기가 격화되어 ‘핵전쟁’까지 거론되었지만 실제 전쟁으로 이어지진 않았는데 베를린에서의 전쟁은 유럽 안보 문제와 직결되어 있었고 3차 세계대전으로 이어질 위험까지 있었기 때문이다. 


베를린은 강대국의 타협 아래 분단을 맞았고, 이러한 맥락 속에서 형성된 동서베를린은 통일이 될 때까지 내내 갈등을 빚는 원인이기도 했지만 동독과 서독을 연결해주는 가교가 되기도 했다.


베를린 문제는 동독과 서독 간의 문제만이 아니었고 냉전 당시 세계정세를 주도하던 미국과 소련, 동서진영이 만들어내는 갈등 속에서 변화하고 발전했다. 하지만 그러한 세계정세의 체제에 종속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베를린에서 일상을 살아내던 주민들의 열망, 그리고 분단으로 겪는 주민들의 고통을 줄이기 위해 베를린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던 정치인들의 원칙 속에서 베를린은 독자적이고도 실용적인 해결 방법을 모색해냈다. 


이 책에서 특히 흥미로운 대목은 분단 당시 동서베를린 주민들이 어떻게 분단을 의식하며 살았는지 그 생활의 모습을 생생하게 그려낸 것이라 할 수 있다. 저자는 분단도 막을 수 없었던 동서베를린 주민들의 출퇴근과 경제활동, 삼엄한 감시와 검열 속에서도 왕래하던 우편통신, 실무적·기술적 차원의 협력을 가능하게 한 하수도 시설, 일상적인 접촉과 교류를 만들어낸 대중교통 체계 등을 섬세하게 포착해 동서독 교류사를 흥미롭게 풀어낸다. 


같은 일터에서 동서독 주민이 함께 일하는 광경을 묘사한 부분이나 도시철도를 타고 경계를 넘어 이동하는 것을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였던 주민들의 경험을 읽다보면, 분단이라는 정치적 구획을 초월하는 일상과 생활의 힘을 느낄 수 있다.


또한 19세기에 이미 베를린 전체에 구축되어 있던 인프라망(우편체계, 상하수도, 도시철도 등)은 분단되었다고 바로 폐기하거나 차단하는 것이 쉽지 않았기에 분단 이후에도 적절한 방식으로 사용되었다. 물론 이러한 시설들이 반드시 탈정치적인 목적으로 사용되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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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는 동독과 서독이 자신의 체제를 선전하는 도구로 이용했고, 동서독 간의 관계가 경색될 경우 사용이 통제되기도 했지만, 시설을 유지하고 관리하기 위해서라도 실무자 간의 교류와 협상은 피할 수 없는 것이었다. 

 

저자는 이 과정에서 작성된 협상문들과 논의 내용을 꼼꼼히 분석하면서 서베를린과 동독이 합리적인 접근 방법으로 문제를 풀기 위해 노력했고, 정치적으로 충돌할 수 있는 사안은 배제한 채 기술적 교류에 집중했음을 밝혀낸다. 이러한 최소한의 소통이 베를린장벽이라는 거대한 분단의 벽에 끊임없이 구멍을 내는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정치적 합의를 이끌어내는 긴장감 넘치는 협상 과정과 극적인 타협의 순간들도 주목된다. 통행증협정, 4대국협정, 통과협정, 여행방문협정을 거치면서 동독과 서독(서베를린)이 합의가 불가능한 부분을 인지하고 합의가 가능한 사안부터 협상을 이끌어내는 과정이 인상적이다. 양측의 협상 과정에서 가장 합의하기 힘들었던 문제는 베를린의 법적 지위에 대한 부분이었다. 


소련과 동독은 동베를린을 동독의 수도로 정하고 서베를린을 독립된 주권적 단위로 규정해 서독과 분리시키려 했다. 이와 달리 서독과 서방연합국은 동서베를린 전체에 대한 연합국의 공동관리 원칙을 고수하며, 서베를린을 서독 연방주의 하나로 간주했다. 

 

이러한 명백한 입장 차이에도 불구하고 협상이 가능했던 이유는 이해관계가 대립하는 민감한 내용은 협상 테이블에 아예 올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서베를린의 시장이었던 빌리 브란트는 이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했던 정치인으로 꼽을 수 있다. 

 

‘작은 걸음 정책’이라는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처음부터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버리고, 한 걸음도 내딛지 않는 것보다는 작은 걸음이라도 내딛는 것이 좋다는 믿음 아래 추진한 브란트의 정책은 동서베를린, 더 나아가 동서독이 통일을 향해 나아가는 데 발판이 되어주었다.


독일 특유의 실용적 접근은 통일 이후에도 이어졌다. 현재 베를린에는 국립도서관, 국립대학, 예술극장 등이 모두 두개씩인데 이는 분단시절 동베를린과 서베를린의 대표 기관들을 한쪽으로 통합하거나 폐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도 원래의 역할을 유지하고 있는 여러 기관들 덕분에 베를린은 세계 그 어느 도시보다 문화적으로 풍요로운 도시가 되었다. 


이는 분단이라는 어두운 경험을 어떻게 이용하느냐에 따라 새로운 미래로 나아가는 자양분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수많은 사례 중 하나일 뿐이다. 다름을 인정하는 관용적 태도, 실질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에 대한 합의점을 찾아나가는 실용적 관점은 분단체제 전환을 앞둔 우리가 새겨들어야 할 대목이라고 할 수 있다.


저자는 1945년 2차대전 종료부터 2019년 현재까지 독일 통일의 역사적 순간을 두루 살피면서 이제껏 뚜렷이 드러나지 않았던 베를린 주민들의 생활상과 동서독 교류의 구체적 양상, 당국 간 협상의 막전막후를 생생하게 추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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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과 독일의 경험을 바탕으로 남북협력 방안의 구체적 로드맵을 연구하고 한반도 평화구축 문제를 세계정세 속에서 파악해온 저자는 대립하는 두 체제 간의 타협과 협력, 끊임없는 교류가 결국 독일 통일의 원동력이었음을 드러낸다. 


무엇보다 동독과 서독, 정부와 주민, 세계정세와 독일정치 등 베를린 문제를 둘러싼 여러 주체들을 균형 잡힌 시선으로 바라보면서 이 각각의 주체가 만들어낸 동서베를린의 분단의 장면들을 풍성하게 그려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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